중국 내 탈북자가 국제 난민(難民·refugee)과 유사한 위기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을 중국 정부에 제기해 탈북자의 강제 북한 송환을 막아야 한다는 내용의 비공개 정책연구 용역보고서를 통일부가 이달 초 펴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신화 고려대 교수(국제정치학)는 통일부의 용역을 받아 ‘탈북자 문제의 국제법적 접근 방안’이라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는 중국 정부가 탈북자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북송시키는 일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 차원의 대응 방안을 찾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풀이된다.
중국 정부는 국제난민협약 가입국이지만 탈북자를 정치적 이유가 아니라 자연재해(환경)나 경제적 이유로 탈북해 중국에 불법 체류하는 사람으로 분류하고 난민 신청권마저 봉쇄한다. 지금까지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인도주의 차원에서 인권을 배려해줄 것을 중국 당국에 비공식적으로 요청하는 ‘조용한 외교’에 머물러 왔다.
국제법상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정치적 이유(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 등)로 박해를 받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중국 정부는 탈북자가 식량난 등 경제적 이유로 탈북하고 있어 이런 ‘정치적 박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이 정치적 이유가 아닌 자연재해 등 비정치적 이유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국내 실향민(internally displaced person)도 난민과 유사한 상황에 놓였다고 보고 보호와 원조를 제공하고 있다며 정부가 탈북자도 비슷한 처지에 있다는 점을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UNHCR는 2004년 동남아시아의 지진해일 피해자와 2008년 사이클론 나르기스 피해를 본 스리랑카인들에게 보호와 원조를 제공했다.
보고서는 또 현재 북한의 내부 상황으로 볼 때 탈북자가 경제적 위기뿐만 아니라 복합 위기상황(complex emergency)에 놓여 있으며 북송될 경우 박해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중국 정부에 강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탈북자의 70%가 여성인 만큼 국제법상의 인신매매 방지 규약을 적용해야 하며, 탈북 과정에서 태어난 아동에 대해서도 국제법상의 아동보호 규범을 적용하도록 중국 정부에 제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특히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대량 탈북 사태의 해결책도 제안했다. 한국만 탈북자를 수용하는 것은 정치적 부담이기 때문에 1970년대 베트남 공산화로 인한 ‘보트 피플’ 때처럼 국제적 콘퍼런스를 통해 여러 국가가 나눠 탈북자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번 보고서를 펴낸 것은 민간 인권단체들의 문제 제기만으로는 중국 내 탈북자 인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가 탈북자의 국제법적 지위를 중국 정부에 제기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예상된다.
김수암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이런 보고서를 펴낸 것만으로도 중국 내 탈북자 인권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진전됐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정부가 공개적으로 탈북자의 난민 지위 부여 문제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성호 북한인권대사는 “중국과의 정치 외교적 관계를 고려할 때 탈북자의 난민 지위 부여 문제를 공식 제기하는 것은 외교적 부담이 크다”며 “적십자사를 내세우는 등의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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