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회의장 점거, 농성, 몸싸움, 법안 강행 처리…. 국민의 따가운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여야를 아군과 적군으로 나눠 당 지도부의 뜻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전투’를 수행하는 여야 의원들. 그들은 서로의 속내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지난해 말 예산안 처리를 놓고 국회에서 힘겨루기를 벌였던 의원들의 행동과 심리를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TV 프로그램 ‘남녀탐구생활’의 포맷을 빌려 분석해봤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 15명을 인터뷰해 당시의 솔직한 심정과 경험담을 들어 이를 종합했다.
‘여야 의원 탐구생활’이란 포맷의 감각을 살리기 위해 의원들의 발언을 다소 과장된 수사법으로 표현했다.》 ■ 예결위 회의장 점거 [여] 또 점거했대요 국민을 위해서 그랬대요 갖다 붙이는 건 국가대표급이에요
[야] 의장 직권상정 않겠다는 말 믿을 수 있나요 회의장서 자다 의사봉 두드리는 악몽 꿨어요
○ 민주당의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 점거(2009년 12월 17∼31일)
▽한나라당 의원들
“민주당이 또 점거를 했어요. 이번엔 예결위 회의장이에요. 아침에 회의장을 지나치다 보니 한 민주당 의원이 기자랑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어요. 국민을 위해 심사숙고한 거라고 맘에도 없는 멘트를 날려대요. 국민, 민주주의, 민생 등 온갖 고귀한 뜻은 다 가져다가 조립하고 있어요. 갖다 붙이는 건 국가대표급이에요. 한 기자가 ‘국정 책임’을 묻자 오리발 대작전 신공을 펼쳐요. 한동안 또 시끄러워지겠어요.”
“동료 의원들과 상임위 회의실에서 만났어요. 조간신문을 펴고 내 이름이 나왔나 열심히 찾아봐요. 하품하는 사진이 있네요. 꼭 이런 사진만 실려요. 기분 전환 겸 오늘의 운세를 눈알이 빠지도록 정독해요. 갑자기 김형오 국회의장이 예산안과 노동법을 직권상정하지 않겠다는 소식이 전해졌어요. 순식간에 분위기가 ‘얼음땡’의 ‘얼음’이 됐어요.”
▽민주당 의원들
“회의장에 들어서면 일단 재빨리 누울 자리를 ‘스캔’해요. 피부 최대의 적인 형광등 자외선이 내리쬐지 않으면서도 직접적으로 히터 바람을 쐬지 않아도 되고 외풍을 최대한 피할 수 있는 투표함 쪽 자리가 생겼어요. 아싸라비야. 쾌재를 부르며 천천히 자리로 다가가요. 이런! 다짜고짜 중진이 달려와 냉큼 앉아버렸어요. 순간의 방심이 화를 불렀어요. 김형오 의장이 직권상정을 하지 않겠다고 했대요.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말이라는 걸 알지만 벼랑 끝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요.”
“잠에서 깨어 보니 등에는 식은땀이 흥건해요. 김형오 의장이 45도 옆으로 팔을 비트는 자세로 의사봉을 두드리는 악몽을 꿨어요. 연말이 다가올수록 황당한 악몽에 시달려 잠도 깊게 못 들어요. 대학 때도 안 해본 노숙이에요. 심심한 김에 같은 상임위 소속 동료 의원들과 한나라당 의원 한 명 한 명에 대한 품평회를 해요. 싸가지 없는 의원, 잘난 척하는 의원, 욕 잘하는 의원, 건방진 의원, 사생활이 복잡한 의원… 모조리 도마에서 난도질 당해요.”
■ 추미애 위원장 노조법 처리 [여] 秋위원장 카리스마 표도르선수 뺨쳐요 민주의원 볼트처럼 달려들어요 난리났어요
[야] 한나라 의원, 조언해준다며 부산떨어요 드센 위원장 피해 딴 상임위 가고 싶어요
○ 추미애 환경노동위원장의 노동관계법 처리(2009년 12월 30일)
▽한나라당 환노위 의원들
“추미애의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에요. 카리스마가 표도르 뺨쳐요. 추 위원장이 회의를 진행하겠다고 하자 민주당 의원들은 우사인 볼트가 현신한 듯 달려들어요. 완전 지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거문고 뜯고 난리가 났어요.”
“민노당 용병들이 도착했어요. 이정희 의원이 코앞에서 ‘사자후’ 신공을 쓰기 시작해요. 인생 산전수전 다 겪은 포스 만땅의 단어들을 줄줄이 던져대세요. 하지만 어깨 통증을 호소하던 추 위원장은 숨겨진 초능력을 활용해 미동도 하지 않아요. 놀라울 뿐이에요.”
▽민주당 환노위 의원들
“추미애 위원장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가 분명해요. 이랬다저랬다 하는 게 마음 안에서 두 명의 추미애가 싸우고 있는 것 같아요. 한나라당 의원이 다가와서 자기 딴에 걱정된다고 조언해준다며 부산을 떨어요. 쿨하게 거절해요. 즐기는 거 다 알아요. 추 위원장을 바라보는 한나라당 의원들 눈에 하트가 뿅뿅 생기는 게 보여요.”
“그나저나 상임위를 옮겨야 하는 것 아닌지 고민이 돼요. 드센 위원장 피해 내 존재감 좀 찾고 싶어요. 앞으로 5개월은 더 있어야 하는데 눈앞이 캄캄해요. 의원실로 돌아와 상임위를 검색해 봐요. 정무위는 폼 나지만 김영선이 있네요. 외통위는 해외도 나가지만 박진이 있네요. 그냥 추 위원장과 박근혜 의원을 맞트레이드하는 건 어떨지 생각도 해봐요.”
■ 본회의장 예산안 통과
[여] 주먹쥐고 기다려요 야당의원들 몰려와요 날아오를지도 몰라요 다리를 잡아야해요
[야] 또 밀어붙인대요 놀부심보가 따로 없어요 막 따졌더니 억울하면 선거에서 이기래요
○ 본회의장 예산안 통과(2009년 12월 31일∼2010년 1월 1일)
▽한나라당 의원들
“오전 7시부터 의총을 시작으로 본회의장 이동까지 강행군이에요. 예산안 통과될 때까지 나갈 생각 말래요. 원내부대표들이 사천왕상처럼 문 옆을 지키고 있어요. 오늘만큼은 ‘웰빙정당’의 꼬리표를 떼야지 주먹을 불끈 쥐어보아요. 야당 의원들이 들어오기 시작해요. 강기갑과 강기정은 다리를 붙잡아야 해요. 마법사와 스파이더맨 콤비예요. 언제 공중부양 신공을 선보일지 몰라요.”
“몇 시간째 앉아있으니까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어요. 하지만 2층에 방송사 카메라들이 촬영 중이라 딴짓을 할 수 없어요. 민노당 의원들은 의장석 앞에서 5시간째 서 있어요. 연체동물도 아니고 어떻게 저런 자세로 저렇게 있을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에요. 가만 보니 다른 의원들은 삼삼오오 이야기 중이네요. 나만 혼자 앉아 있으려니 기자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요. 왕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해요. 휴대전화를 꺼내 만지작거리며 누군가와 연락 중인 척해요.”
“민주당은 대표가 대기업 임원 출신인데도 ‘장사’를 잘 못해요. 본전이라도 건질 생각은 안 하고 4대강 반대에 ‘올인(All in)’만 외쳐요. 자기가 이병헌인 줄 아나 봐요. ‘4대강 예산’은 대폭 할인을 준비했는데 다 필요없대요. 고마울 따름이에요. 울트라캡숑나이스짱이에요. 드디어 김 의장이 직권상정을 한다고 해요. ‘올레’라고 말하고 춤이라도 추고 싶지만 꾹 참아요. 내일 아침에는 집에서 떡국을 먹을 수 있게 됐어요. 잇힝∼.”
▽민주당 의원들
“한나라당이 또 밀어붙인대요. 본회의장을 점거했대요. 있는 놈들이 더 해요. 뭐 이런 놀부 곱하기 스크루지 심보가 있나 몰라요.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억울하면 선거에서 이기래요. 왜 국회의원들은 여당 의원만 되면 밥맛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들을 못해요. 나도 여당 두 번 해봤지만 수준이 달랐어요. 요즘 여당은 정말 버릇이 없어요. 자리에 앉아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을 보니 우리를 보며 키득키득 웃고 떠들고 초등학생 소풍 분위기예요. 원래 수준이 낮아서 어쩔 수 없어요. 문득 3년 전 여당일 때가 생각나 순간 눈물이 울컥 나요.”
“의장석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는데 그동안 무리를 해서인지 정신은 안드로메다로 가려 해요. 그러는 순간에도 우리 지역구 예산이 잘 들어갔는지 신경 쓰여요. 이러다가 지역 예산안 빠져버리면 지역에서 욕을 주야장천 9박 11일로 들어도 모자랄 텐데 큰일이에요. 하지만 4대강 사업은 대운하 욕심에서 나온 나라 망칠 일이 분명해요. 내 몸 던져 막겠다는 사명감에 가슴이 울렁대요.”
“일부에서는 강경하다지만 나도 지쳐요. 농성하고 몸으로 막다가 들어온 고소 고발장을 합쳐 폐지로 팔면 서울 근교에 집 한 채 살 것 같아요. ‘몸’ 말고 다른 방법 있으면 족집게 과외라도 받고 싶어요. ‘백봉신사상’ 한 번 받는 게 소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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