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에 최대한 예우
주호영 장관, 초안 나온 즉시
허태열 최고위원 만나 설명
정보소외 안 느끼게 배려
좌초 대비 ‘플랜B’ 구상
현재로선 국회 표대결 불리
수정안 강행 포기하고
차기정권 넘기는 방안도
세종시 수정안 발표가 사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청와대와 친이(친이명박)계가 본격적으로 친박(친박근혜)계 의원 설득 작업에 나섰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7일 다시 ‘원안고수 방침’을 밝혔지만 청와대와 친이계로선 친박계 설득 작업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친박연대까지 포함해 60석에 육박하는 친박계의 협조 없이는 수정안 처리는 물론이고 향후 국정 운영 전반이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친이계 중진 의원은 박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 “늘 하시던 말씀”이라며 “우리는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 조심스럽게, 그러나 최대한 많이
주호영 특임장관은 6일 친박계인 허태열 최고위원을 만나 세종시와 관련한 협조를 당부했다. 허 최고위원은 옛 내무부 출신으로 충북지사를 지냈다. 세종시 문제와 같은 행정 현안에 식견과 이해를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이날은 정운찬 국무총리가 수정안 초안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날이다. 초안이 마련되자마자 곧바로 주 장관이 허 최고위원을 찾았다는 점에서 예우에 각별히 신경을 쓴 정황이 엿보인다. 여권 관계자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허 최고위원을 통해 정부의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우선은 친박계와의 접촉면을 확대하면서 간접적으로나마 박 전 대표의 이해를 구하는 쪽에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박형준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과 박재완 대통령국정기획수석비서관 등 청와대 참모들도 친박계와의 접점을 늘려가고 있다. 정무라인 관계자는 “2월 임시국회가 열리기 전까지를 1차 고비로 보고 있다”며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다 만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친이계는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간 회동에 대해서는 성급하게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과거에도 양측이 여러 번 만났지만 대부분 뒤끝이 좋지 않았던 데다 현재로선 회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따라서 우선은 박 전 대표 주변 인사들을 설득하면서 양측 간 긴장을 완화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총리실이 7일 기자들에게 세종시 수정안 내용 관련 엠바고(일정 시점까지 보도자제)를 요청하고 나선 것도 친박계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제기된 측면이 있다고 한다. 세종시 입주 기업 등 핵심 사안이 언론에 먼저 보도된 뒤 나중에 친박계에 관련 사실을 확인해 주는 모양새가 되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다.
○ 세종시 후폭풍 차단
이와 별도로 한나라당 주류 측은 박 전 대표와 야당의 반대로 세종시 수정안의 국회 처리가 좌절될 경우에 대비한 플랜B(최초 계획이 실패했을 경우 실행할 차선책)를 짜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한 핵심 당직자는 “세종시 관련 법 개정이 불가능할 경우 이 문제가 당과 이명박 정부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하고 지방선거에도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대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이 중심이 돼 충청권과 친박 진영을 적극적으로 설득할 계획이지만 원안 수정이 실패했을 때 정국을 수습하는 방안을 본격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수면 위와 물밑에서 세종시 논의를 투트랙(Two-Track)으로 동시에 진행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박 전 대표가 반대하면 어떤 경우에도 수정안의 국회 처리가 불가능하다’는 여권 주류의 인식에서 비롯된 고육지책으로 볼 수 있다. 세종시로 친이계와 친박계가 정면충돌할 경우 정국이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갈 소지가 크다. 정부 출범 이후 줄곧 당내 화합을 강조해온 이상득 의원도 최근 세종시 문제로 당내 갈등이 폭발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를 주변에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주류 측은 현재 △박 전 대표가 반대할 경우 수정안을 포기해야 할 시점 △수정안 추진을 포기한다면 원안을 추진하거나 세종시 추진을 아예 차기 정권으로 미루는 방안 △수정안 포기 이후 친박계와의 관계 설정 및 당 운영방안 등에 대해 물밑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주류 핵심 인사들은 최근 박 전 대표 측에 “만약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 강행을 포기하고 아예 세종시 건설 자체를 차기 정권으로 넘길 경우 어떻게 하겠느냐”고 간접적으로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세종시법 내년이 개정시한… 與일각 ‘속도 조절론’ 나와 김형오 의장 “충분히 논의해야”… 직권상정 거부 시사▼
11일로 예정된 정부의 세종시 수정 방안이 공개되면 이제 ‘공’은 정부에서 정치권으로 넘어간다. 세종시 수정 방안을 뒷받침할 중요한 후속 절차인 관련법 제정 개정 작업이 국회에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세종시 관련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노무현 정부에서 제정돼 이미 시행 중인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세종시특별법)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논의 중인 세종특별자치시설치법(설치법)이다.
이 중 세종시의 성격과 건설 방향을 규정하는 세종시특별법의 개정을 놓고 첨예한 논란과 대립이 예상된다. 2005년 이 법이 만들어진 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다. 당시 여야는 협상을 벌였으나 상당수 한나라당 의원의 반발로 사실상 여당인 열린우리당 단독으로 세종시법이 처리됐다.
한나라당은 6일 최고중진연석회의 비공개 회의에서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발표 이후 국회 차원의 세종시특위를 구성하자고 야당에 제안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특위 구성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친이(친이명박)계-친박(친박근혜)계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고, 민주당이 특위 구성에 응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부 입법으로 법안을 처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여당이 정치적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는 것보다 정부가 만들어 제출한 안을 국회에서 처리하는 것이 쉽다는 판단에서다.
개정할 대목은 단순하다. ‘행정중심복합도시’라는 이름에서 ‘행정중심’ 부분을 삭제하고, 정부 부처 이전을 규정한 부분을 정부가 발표할 수정 방안에 맞게 고치면 된다.
국무총리실 등 정부 부처의 세종시 이전 시기는 ‘2012년부터’로 잡혀 있다. 따라서 여권이 연내에 이 법을 강행 처리할 필요는 없다. 최악의 경우 내년에라도 법을 개정하면 된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일각에서 ‘수정안 확정 연기론’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여권 내에선 세종시 이슈를 해를 넘겨 끌고 갈 수 없다는 생각이 우세한 편이다.
세종시설치법은 세종시의 성격이 아니라 관할구역과 법적지위 등을 규정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여야의 이견이 적은 이유다. 그러나 야당이 세종시설치법 제정을 세종시특별법 개정과 연계할 개연성이 커 난항을 겪을 소지가 많다.
국제과학비지니스벨트의 세종시 유치가 확실해짐에 따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도 세종시 관련법에 포함됐다. 여권은 현재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에서 논의 중인 이 법에 과학벨트 설치 지역을 세종시로 못 박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편 김형오 국회의장은 7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세종시 관련법의 직권상정 여부에 대해 “나는 국회법을 고쳐 의장의 직권상정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직권상정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김 의장은 “국회가 세종시 문제를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은 논평에서 “김 의장이 ‘직권상정을 안 하겠다’고 하면 자꾸 직권상정으로 가기 때문에 더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세종시 파격적 혜택 알려지자 다른 지자체 “상대적 홀대” 반발▼ 대기업 등에 용지를 싸게 제공하는 내용을 담은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초안이 알려지자 이해관계가 닿아 있는 다른 지자체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7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함께 성남의 인력시장을 방문해 구직자들과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경기도를 홀대해도 유분수지. 나중에 표로 보여주겠다”며 정부 정책에 불만을 드러냈다. 김 지사는 “세종시에 비하면 경기도는 (정부 배려가) 100분의 1도 안 된다. 다 가져가라.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는지 한번 보라”고 말했다.
다른 시도지사들도 불만을 나타냈다. 세종시가 파격적인 유인정책으로 대기업이나 대학 유치에 나서면 다른 지역에 상대적인 피해가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김관용 경북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서로 상생하고 다른 지역도 살아야 한다”며 “지방에 투자하는 기업이나 재투자하는 기업에도 세종시처럼 국세 감면 혜택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의 혁신도시, 경제자유구역, 국가산업단지 등에도 국비 지원을 대폭 확대하고 땅 분양가도 파격적으로 내려야 한다는 게 시도지사들의 주장이다.
전남도는 이날 세종시 사업에 타 시도와 공동 대응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세종시 인센티브 관련 대응방안’을 발표했다. 이상면 전남도 행정부지사는 “세종시가 경제자유구역 수준의 인센티브와 파격적인 용지 공급가격으로 비수도권 지역의 기업 유치에 큰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광태 광주시장은 “세종시에 대해 토지를 반값에 제공하고 세제 혜택과 재정지원을 하게되면 광주뿐 아니라 모든 지방은 고사(枯死)하고 국가균형발전은 물거품이 된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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