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 당내 진보세력 대변 동아일보와 한규섭-임요한 교수팀이 실시한 18대 국회의원들의 투표성향에 따른 이념성향 분석 조사 결과는 정치인의 이미지와 실제 법안 투표 행태 간의 괴리를 보여준다. 교수팀은 “정치인의 이미지는 눈에 띄는 몇몇 사건이나 ‘이미지 메이킹’으로 결정되기 쉽다”며 “법안 투표 결과를 통해 나타난 의원의 성향을 객관적으로 알아보자는 게 이번 분석의 의미”라고 말했다. ○ ‘진보적인 박근혜? 보수적인 원희룡?’
가장 진보적인 의원을 1위로, 가장 보수적인 의원을 278위로 했을 때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이념 순위는 121위로 나타났다. 분석 대상 의원(278명)의 한가운데(139위)보다 왼쪽에 서 있는 것이다. 박 전 대표의 지역구는 TK(대구경북)이고, 보수적 이미지도 강하다.
박 전 대표 측 관계자는 “외교, 안보 관련 법안에는 보수적이지만 사회 관련 법안에는 진보적 성향을 보였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이다.
그렇다면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도 상대적으로 진보적 투표 행태를 보였을까. 한나라당에서 가장 진보적인 의원은 친박계인 이혜훈 의원(93위)으로 나타났지만, 전체 의원 중 가장 보수적인 의원으로 나타난 이인기 의원(278위) 역시 친박계였다. 교수팀이 친박계 의원 가운데 핵심 12명(구상찬 김선동 서병수 서상기 유승민 유정복 이성헌 이정현 이혜훈 진영 허태열 현기환·가나다 순)을 골라 이념 순위 중간값을 산출해본 결과 209.1위였다. 한나라당 의원 전체(중간값 205.2위)나 ‘친이(친이명박)계’ 의원 모임인 ‘함께 내일로’ 소속 의원(중간값 208.1위)들과 투표 성향이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반면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소장파’ 이미지가 강한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이념순위 242위)은 한나라당 의원 중간값(205.2위)보다 오히려 오른쪽에 위치했다. 원 의원 측은 “원 의원은 (덜 논쟁적인 법안이라면) 대체로 당 지도부에 힘을 실어주는 편”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원조 소장파’로 불리는 남경필 의원의 이념 순위는 132위로, 한나라당 의원만을 대상으로 했을 때는 25번째로 진보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60위)는 의원 전체의 분포로 봤을 때는 왼쪽에 있지만 민주당 의원(분석 대상 80명의 중간값은 50.5위) 중에서는 52위로 당내에서 상대적으로 오른쪽에 위치한다. ‘친노(친노무현)계’, 386세대가 지지기반이지만 실제 표결 패턴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추미애 의원의 이념 순위는 전체 10위로 한때 ‘탈레반’으로까지 불렸던 천정배 의원(26위)보다 진보적 투표 성향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원조 보수’를 자처하고 있는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의 이념 순위는 145위로 분석 대상 의원의 중간 지대에 속했다.
○ 민주노동당→ 민주당→ 자유선진당→ 한나라당 순
당별로는 왼쪽부터 민주노동당 민주당 자유선진당 한나라당의 순서로 배열됐다.
민주당과 민노당은 정책마다, 사안마다 공조를 하곤 해 정치권에서는 “실제로는 한 묶음”이라는 얘기가 나오지만 법안 투표 결과를 분석해 보니 두 당의 성향엔 차이가 있음이 분명히 나타났다. 민노당 의원들(5명)은 민주당 강성종 의원(이념 순위 4위)을 제외하고는 모두 민주당 의원들의 왼쪽에 위치했다.
민주당은 부산지역 출신인 조경태 의원(107위)을 제외한 의원 전원이 한나라당 의원보다 왼쪽에 위치했다. 조 의원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92위 이전에 속했다.
자유선진당 의원들의 중간값은 99.3위로 한나라당의 중간값(205.2위)보다 왼쪽에 있지만 의원들의 이념 스펙트럼이 대단히 넓어 중간값만 가지고 자유선진당의 이념적 위치를 평가하기는 어려웠다. 가장 진보적인 의원(박선영·39위)과 가장 보수적인 의원(이용희·191위) 사이에 무려 152명의 의원이 있었다. 교수팀은 “선진당이 정책, 이념 성향보다는 충남이라는 지역을 근간으로 하는 정당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선진당 의원들은 16, 17대 국회 때엔 열린우리당(권선택 박상돈 이상민 이용희) 자민련(김낙성 류근찬 변웅전 이재선) 등에 속해 있었다. ○ 당내 모임별 특성도 드러나
한나라당 소장파 모임인 ‘민본21’ 소속 14명(권영진 권택기 김선동 김성식 김성태 김세연 김영우 박민식 신성범 윤석용 정태근 주광덕 현기환 황영철·가나다 순)의 이념 순위 중간값은 168.1위로 한나라당 중간값(205.2위)보다 훨씬 왼쪽에 위치했다. 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의 모임인 ‘다시 민주주의’ 소속 의원들(강기정 김상희 김영록 백원우 조정식 최문순 최영희 최재성 홍영표 의원)의 이념 점수 중간값은 30.8위로 민주당 평균값(50.5위)보다 훨씬 왼쪽에 위치했다. 민주당 의원 중 후순위 10명에 속하는 최인기(80위) 홍재형(82위) 변재일(83위) 김진표(84위) 강운태(85위) 박상천(90위) 강봉균(92위) 의원은 대부분 관료나 옛 민주계 출신이다.
○ 중도 성향 의원들은
278명 가운데 이념 점수의 중간(139위·한나라당 이애주 의원)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10명씩(129∼149위)은 18대 국회의원 중 ‘가장 중도적인 의원’으로 볼 수 있다는 게 교수팀의 분석이다. 여기에는 한나라당 권영세(130위) 홍정욱(140위) 진영(142위) 김세연 의원(146위) 등이 포함됐다.
한나라당 의원들 사이에서 중간지대에는 정태근(170위) 황우여(182위) 김효재 의원(192위) 등이, 민주당 내 중간지대에는 백재현(42위) 전병헌(45위) 신낙균 의원(48위) 등이 각각 포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오바마 ‘가장 진보적’ 평가… 美 표심 주요 지표로 표결불참 많았던 매케인 “선명성 떨어진다” 역풍▼ 미국 선거에서 의원들의 이념 점수는 유권자들의 주요한 선택 지표 역할을 한다. 워싱턴 정가 소식을 다루는 주간 ‘내셔널 저널’이 매년 상하의원 전체의 이념 순위를 발표하는 것을 비롯해 스탠퍼드대 등 공신력 있는 3, 4개 기관의 조사 결과는 유권자들이 정치인의 이념 성향을 판단하는 틀이 된다.
2004년 대통령 선거를 9개월 앞두고 민주당 후보인 존 케리 상원의원은 내셔널 저널 조사에서 ‘가장 진보적(most liberal)’으로 평가됐다. 그러자 공화당은 1년 내내 케리 후보를 “(진보 성향으로 유명한) 매사추세츠 주에서 온 진보 후보”라고 묘사했다. 이후 케리 후보가 현직 대통령인 조지 W 부시 후보에게 패배한 이유 가운데 ‘진보 이미지’는 빠지지 않고 거론됐다.
2008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후보가 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에게도 ‘가장 진보적’이란 평가가 매겨졌다. 분석 대상 66개 법안 가운데 65개를 진보적으로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념 이슈가 압도한 2004년의 악몽이 되풀이될지 몰라 긴장했다. 그러나 리먼브러더스 사태라는 초대형 경제이슈가 터지면서 적어도 오바마 후보가 이념 논쟁으로 손해를 봤다는 주장은 많지 않았다.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보수 정치인이었지만 이념 점수는 덜 보수적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당내에서 가장 독자적(maverick)인 투표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케인 후보는 2008년 발표에서 배제됐다. 표결 불참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핵심 보수층은 이를 두고 “매케인 후보가 선명한 공화당 성향을 표결로 보여주지 않았다”며 공개 지지를 꺼렸다. 선거가 경제위기 책임론과 위기탈출 해법을 중심으로 전개됐지만 보수적인 지지자가 매케인 후보에게 결집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2008년 대선에서 이념 점수는 부분적인 기준으로 작동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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