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핵연료 재처리 희망’ 오해 풀 묘책 있을까

  • 동아닷컴
  • 입력 2010년 1월 30일 03시 00분


■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고심

파이로프로세싱 최대 쟁점
플루토늄 추출 안하는 기술
원전수출 막힐 가능성은 적어

핵주권론도 걸림돌
北 비핵화 6자회담 차질 우려
美의회 “한국 핵재처리 경계”





2014년 3월로 유효기간이 끝나는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문제를 놓고 한국과 미국 당국이 고심하고 있다. 아직은 시간적인 여유가 있지만 자칫 잘못 손대면 협정 개정 논의 자체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튈 수 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현재 한미 간의 최대 쟁점 가운데 하나는 아직 연구단계인 ‘파이로프로세싱’을 담는 방식으로 협정을 개정할 것인지의 문제다. 여기에다 핵 주권론 등 논외의 문제가 불거지면 핵무장이라는 엉뚱한 논란으로 불거질 개연성도 있다는 게 양국 정부의 우려다.

○ 왜 원자력협정을 개정하려 하나?

천영우 외교통상부 2차관은 최근 워싱턴에서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 측 관계자들과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문제에 대해 논의하면서 양국 간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가기 전에 파이로프로세싱에 대한 전문가들의 기술적, 경제적 타당성 검토를 거쳐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원자력협정 연장이 아닌 개정을 고려하는 것은 파이로프로세싱을 포함시키기 위한 것이다. 새로운 재처리 기술을 확보함으로써 핵연료를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해도 안정적으로 핵연료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또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면 이미 포화상태인 핵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으며 앞으로 원자력기술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기대감도 작용하고 있다.

현재는 핵폐기물을 그냥 쌓아두는 형편이다. 문제는 아직 이 기술의 타당성을 확인하기가 어려운 데다 상용화도 모든 과정이 성공한다는 가정 아래 2020년쯤에나 가능하다는 점이다. 경제성 문제도 검토해야 한다. 상업성이 없다면 이를 굳이 고집해봐야 수십조 원의 돈만 낭비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 원자력협정 개정 우려와 진실

앞으로 본격 협상을 앞두고 제기되는 우려 가운데 하나는 만약 협정 개정에 실패할 경우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한국의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가 날아갈 뿐 아니라 국내 원전 건설조차 불가능해질지 모른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원전 수출길이 막힐 개연성은 거의 없다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개정이 어려울 경우 기존 협정을 연장하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원전을 수출하려면 한국이 수출 대상국과 원자력협정을 체결해야 하며 수출 대상국도 미국과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그리고 원천기술 제공국의 승인사항이므로 한국이 UAE에 수출할 모델의 일부 핵심기술 보유사인 웨스팅하우스가 미 에너지부에서 승인절차를 밟아야 한다. 하지만 이는 형식상의 승인 절차이므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한국 정부와 업계의 설명이다.

○ 핵 주권론이 야기할 수 있는 파장

일각에서 제기되는 핵 주권론도 한미 양국 정부가 민감하게 여기는 대목이다. 농축과 재처리를 통해 핵주기를 완성해야 한다는 일부 과학계의 주장이 핵 확산 방지를 안보의 최우선 과제로 두는 미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핵 주권론은 북한의 비핵화에 초점을 맞춘 한국 정부의 안보정책 방향과도 어긋난다. 한국이 북한 비핵화를 요구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체적으로 핵개발을 하려는 것으로 비치면 북핵 6자회담의 근본적인 토대가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핵개발을 추진한다는 오해를 받으면 미국은 기존 협정의 연장조차 기피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정부는 이런 이유로 파이로프로세싱의 타당성 검토가 끝나는 것을 지켜본 뒤 핵 주권론의 공론화를 피하면서 조용하게 미국과 협상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협정의 기본 목표는 결국 평화적인 핵 기술 활용이기 때문이다.

○ 조심스러운 미국

미국 정부는 1차적으로는 기존 협정의 연장을 희망하고 있다. 파이로프로세싱에 대한 안전성 및 실용 가능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미국은 한국이 파이로프로세싱을 거듭 언급하는 것조차 핵 재처리에 집착하는 것으로 보고 경계감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미국이 가장 신경 쓰는 대목은 한국에 대한 예외규정을 만들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하는 ‘핵 없는 세상’을 향한 비핵화 구상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최근 ‘한미 세계 원자력에너지 시장에서의 협력’ 보고서에서 재처리 시설 등 한국의 핵주기 완성 주장에 대해 경계할 것을 주문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 파이로프로세싱 (Pyro-processing) ::

한국과 미국 연구진이 공동 연구 중인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의 신기술. 수조에 담아두는 습식정련기술과 다른 건식정련기술이다. 기존 기술과는 달리 플루토늄을 따로 추출하지 않고 폐기물을 90%까지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