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결별 수순… 친박 ‘분열’ 시작?

  • 동아닷컴
  • 입력 2010년 2월 19일 03시 00분


김무성 ‘세종시 원안’에 반기… 독자노선 공개 표명

金, 朴에 “거부말라” 직격탄… 돌이킬 수 없는 선 넘어
朴 “친박에는 좌장이 없다”… 김무성案 무게감 무력화


한나라당 친박(친박근혜)계의 좌장 격인 김무성 의원이 1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등 7개 국가기관을 세종시에 내려 보내는 절충안을 설명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한나라당 친박(친박근혜)계의 좌장 격인 김무성 의원이 1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등 7개 국가기관을 세종시에 내려 보내는 절충안을 설명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한나라당 친박(친박근혜)계 좌장 격인 김무성 의원이 18일 대법원 등 7개 국가기관을 세종시로 내려 보내는 절충안을 제시하면서 세종시 정국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친이(친이명박)계 주류 측이 의원총회를 열어 당론 변경을 추진하고 친박계는 이를 거부하며 정면충돌 양상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극적인 타협을 위한 ‘중간 지대’가 열린 것이다.

친박 진영의 원안 고수 의견에 반기를 든 김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가 발전을 위한 일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갈등이 있을 게 없다”고 했지만 박 전 대표는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을 통해 “(김무성 절충안은) 한마디로 가치가 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정치권에선 박 전 대표와 김 의원이 결별 수순을 밟으며 친박 진영의 ‘핵분열’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 “친박에는 좌장이 없다” vs “스스로 좌장이라 한 적 없다”

박 전 대표는 이정현 의원을 통해 김 의원이 친박계 좌장으로 비친 데 대해 “친박에는 좌장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김 의원이 “박 전 대표도 기존의 관성에 젖어 바로 거부하지 말고 고민해 달라”고 한 대목에 대해선 “그 법(세종시법)의 취지를 생각해야 한다”며 “모든 절차를 밟아서 국회에서 통과돼 시행 중인 법을 지키고,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을 관성으로 반대한다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내 스스로 좌장이라고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법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게 아니고 원안에 가장 가까운 절충안을 내놓은 것”이라며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기본 예의다. 승패를 가르는 싸움을 그만둘 것을 박 전 대표에게 간청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그러면서 “앞으로 모든 토론회 등에 참석해 내 주장을 알리겠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절충안을 지렛대 삼아 독자 노선을 걷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하지만 김 의원이 박 전 대표의 벽을 넘어 자신의 구상을 실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유정복 의원은 “절충안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사전에 김 의원과 논의하지 않았다”고 밝혔고, 6선의 홍사덕 의원은 “김 의원이 오늘 오전에 기자회견을 하겠다며 전화가 왔기에 (절충안 제시는 해법이) 안 되니 하지 말라고 했는데 회견을 해버렸다”고 말했다. 일부 친박계 의원은 박 전 대표와 김 의원의 정면충돌이 몰고 올 파장을 우려했다.

○ 절충안 논의 탄력 받나

안상수 원내대표는 18일 당 소속 의원들에게 “22일 오후 2시 국회 본관 예결위회의장에서 세종시 관련 논의를 위한 의총을 소집한다”고 통보했다. 이어 “22일 토론은 끝이 아니라 토론의 시작이며 몇 차례 더 토론을 진행해 합리적 결론을 찾아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수의 친이계 의원 가운데는 의총에서 표 대결을 불사하는 극단적인 당론 변경 절차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특히 당론 변경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립 성향의 일부 의원은 ‘절충안을 통한 타협’의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김 의원의 절충안은 이 같은 당내 교착 상태를 뚫기 위한 새로운 돌파구를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치는 협상과 타협이다. 자기 양보를 통해 절충안을 만들어 내야 한다”며 양측의 양보를 촉구했다. 중립 성향의 남경필 의원은 “내용의 현실성은 의문시되지만 절충안이 제시되고 토론이 이뤄지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의 정면 비판으로 친박 진영이 내부 단속에 나설 경우 세종시 논의 자체가 불투명해지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과 자유선진당은 “(김무성 절충안은) 고려할 가치가 없다”고 반대했다.

○ 국가기관 이전 현실성 논란


김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국회에서 입법을 통해 기관들의 이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현행 법원조직법 12조는 ‘대법원은 서울특별시에 둔다’고 규정하고 있고 헌법재판소는 소재에 관한 별도의 규정이 없다.

절충안의 정치적 의미와는 별도로 헌법기관인 대법원, 헌법재판소,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전 대상에 포함된 것에 대해선 논란이 일 소지가 있다.

노무현 정부가 2004년 신행정수도 방안(수도 이전)을 추진할 때도 이들 3개 기관은 국회와 함께 ‘자체적으로 이전 여부를 결정할 기관’으로 분류해 사실상 이전 대상에서 제외됐다. 헌법기관이 이전에 동의하지 않는 상황에서 국회가 이를 강제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부산대 김용철 교수(정치학)는 “정부 부처보다 이전이 더 어려운 기관들을 이전 대상으로 정한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분석했다.

김 의원의 절충안은 정부가 수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초기에 검토했던 사안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정책라인 핵심 관계자는 “세종시 문제를 풀기 위해 사법부에 청사를 옮기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만약 공론화한다면 또 다른 논란이 일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2005년 당 대표-사무총장 인연… 작년초 ‘金 원내대표 추대’로 갈등 깊어져
■ 박근혜-김무성 애증의 5년


18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으로 들어가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둘러싼 기자들은 이날 오전 김무성 의원이 제안한 세종시 절충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박 전 대표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길 좀 비켜주세요” “나중에 얘기하죠”라며 본회의장으로 들어갔다. 본회의장에서 박 전 대표 왼쪽 옆은 김 의원의 자리였지만 김 의원은 이날 본회의에 들어오지 않아 두 사람의 어색한 만남은 없었다. 이후 박 전 대표는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을 통해 ‘김무성 절충안’에 반격을 가했다.

박 전 대표와 김 의원의 인연은 5년 전인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야당 시절 한나라당 대표와 사무총장으로 호흡을 맞추며 긴밀한 사이로 발전했다. 하지만 부침도 없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를 1년여 앞둔 2006년 대표직을 물러난 박 전 대표에게 김 의원은 서둘러 경선 캠프를 꾸리자고 건의했다. 경쟁자였던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임기를 마치고 일치감치 경선에 대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구태 정치를 하지 않겠다”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현실과 원칙의 괴리가 두 사람의 간극을 벌려놓았다.

경선전이 본격화되면서 김 의원은 경선 캠프의 조직 총괄본부장을 맡아 선거전을 진두지휘했다. 2008년 총선을 앞두고 ‘친박계의 좌장’ 격인 김 의원은 공천에서 탈락했다. 친박계 무소속으로 나선 그를 포함한 낙천자들에게 박 전 대표는 “살아서 돌아오라”고 했다. 영남권에선 김 의원이 박풍(朴風)의 전도사를 자임했다. 총선에서 무사 귀환한 김 의원은 다시 한나라당에 들어와 친박계 좌장으로 부활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지난해 초 다시 삐끗거렸다. 김 의원은 “이제부터는 할 말은 하겠다”며 친박계를 추스르려 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개인 입장일 뿐”이라고 이를 일축했다. 결정적인 파국은 지난해 5월 당 주류가 화합 차원에서 김 의원을 원내대표로 추대하려 한 사건이다. 김 의원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려 했지만 박 전 대표는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이후 김 의원은 두문불출했다.

세종시 문제는 두 사람 사이에 결정적인 금이 가게 했다. 원안 고수에 정치적 생명을 건 박 전 대표와 달리 김 의원은 원안에 반대하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박 전 대표가 18일 공개적으로 “친박계에는 좌장이 없다”고 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마지막 선을 넘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하지만 당 일각에선 우여곡절이 많았던 박 전 대표와 김 의원의 관계를 떠올리며 두 사람이 쉽게 갈라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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