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국민투표론을 바라보는 헌법학자들의 의견은 크게 엇갈린다. 과연 세종시 문제가 국민투표에 부칠 사안인지, 또 국민투표 결과가 입법권을 가진 국회에 구속력을 갖는지에 대해 학자마다 다른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헌정 사상 특정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친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나 “판단 권한 대통령에게 있다” “국가 안위와 무관… 부적절”
헌법 제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이 조항을 어떻게 해석할지가 관건이다.
임지봉 서강대 교수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와 ‘부칠 수 있다’는 문구를 주목해야 한다”며 “헌법에선 국민투표 사안 여부의 1차적 판단 권한을 대통령에게 광범위하게 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투표 회부 결정은 대통령이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도 “국민투표는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로 특정 자구(字句)에 얽매여 해석할 필요가 없다”며 ‘세종시 국민투표’가 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에 반해 조홍석 경북대 교수(한국헌법학회장)는 “국민투표가 남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헌법 조항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며 “세종시 문제는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 국회는 국민투표 결과에 순응해야 하나 “국회 입법권 구속할 수 없다” “국민의 뜻은 국회 위에 있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도 “세종시 문제는 헌법 72조의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지역적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사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면 갈등을 해소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심화시킬 뿐이다”고 말했다.
세종시 문제에 대해 국민투표에서 특정한 결과가 나왔을 경우 국회의원들은 반드시 그 결과에 순응해 법률 제·개정 절차를 밟아야 할까.
김승환 전북대 교수는 “법률 제·개정의 전속적(全屬的) 권한은 국회에 있다”며 “헌법 72조에 따라 국민투표를 했다 해도 그 결과를 국회가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전광석 연세대 교수도 “법률을 제·개정하기 위해 국민투표를 할 수 없다”며 “국민투표가 국회의 입법권을 우회하거나 이미 제정된 것에 대한 거부 기능을 갖게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조홍석 교수는 “국민투표 결과는 헌법적 효력을 가져 어느 국가기관도 이에 반한 결정을 할 수 없다”면서도 “바로 그 점 때문에 특정법률을 국민투표에 부쳐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성낙인 교수는 “국회는 주권적 의사(국민투표 결과)에 순응해야 한다”고 말했고, 장영수 교수도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는 국회의원들의 법률 의사결정권을 구속한다”고 밝혔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당론 무산후 국민투표, 정권 명운 거는 일”▼ ■ 친이가 보는 시나리오 ① 친박과 합의땐 국회서 정상적 법개정 가능 국민투표도 하면 野공세 차단
② 당내 합의 불발땐 당론변경 표결 ‘1차 격돌’ 안되면 국민투표 ‘2차 격돌’ 통과해도 법개정 또 논란
여권 주류 진영이 바라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 간 합의안을 도출하는 것이다. 합의안이 도출되면 의원총회를 통한 당론 변경도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 야당의 반대가 예상되지만 과반 의석의 한나라당이 단합하면 관련 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친이계 진영은 지방선거 일정을 감안해 가급적 4월 국회 이전에 이 과정이 마무리되길 바라고 있다.
조만간 출범할 중진협의체는 세종시 합의안의 도출 여부를 가늠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권 내부에선 중진협의체가 이미 골이 깊어진 친이-친박의 이견을 절충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만만찮지만 “극적인 타협안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도 없지 않다.
친이계 핵심의원은 2일 “중진협의체가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를 모두 만나 의견을 듣고 당이 이 문제와 관련해 움직일 여지를 달라고 요청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런 과정이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만남으로 이어지도록 한다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영남권의 친박계 중진의원은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사이를 오가는 가교역할을 통해 합의안을 만들어낸다면 그 후 일정은 단합된 여당의 힘으로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여권 일각에선 합의안이 나온 상황에서 국민투표에 부치는 방안도 있다. 원안 이외의 안으로 합의안이 귀결되면 국민투표에 부쳐 여론의 추인을 받고 가자는 것이다. 국민투표 절차를 밟으면 2012년 대통령선거 때 야당이 이 문제를 정치 쟁점화할 명분도 약해진다는 점이 감안됐다.
반면 합의안 도출이 무산되면서 친이계 주류가 수정안을 놓고 당론 변경 표결을 강행하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먼저 의총에서 당론 변경 표결에 필요한 113명(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표가 나오지 않아 부결될 수 있다. 당론 변경에 성공해도 관련 법안의 국회 처리 과정에서 친박계와 야당이 뭉치면 재적과반을 확보하기 때문에 본회의 의결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회 합의가 벽에 부닥쳐 국민투표에 부칠 경우에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설령 세종시 수정안이 국민투표를 통과해도 관련 법안을 다시 국회에서 논의해야 할지를 놓고 찬반 논란이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투표가 부결되면 이명박 정부가 치명적 타격을 입는 것은 물론이다. 친이계의 한 핵심의원은 “여당 내 합의가 안 된 상황에서 국민투표에 부의하는 것은 정권의 명운을 거는 도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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