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두라스 이민 33년 만에 한국교민 첫 주한대사 내정 강영신씨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8일 03시 00분


“휴대전화 번호 1945… 한국 못잊어요”

남편 태권도 제자 현 대통령
20일 전 이른 아침에 전화
한국인 근면성 인정받은 느낌
대사되면 기술전수 등 힘쓸것

주한 온두라스대사에 내정된 온두라스 동포 강영신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 남편 송봉경 씨(2008년 작고·오른쪽)가 2005년
온두라스 체육공로훈장을 받은 뒤 함께 찍은 사진이다. 왼쪽부터 사위, 딸, 로보 대통령(당시 국회의장). 사진 출처 온두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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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온두라스대사에 내정된 온두라스 동포 강영신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 남편 송봉경 씨(2008년 작고·오른쪽)가 2005년 온두라스 체육공로훈장을 받은 뒤 함께 찍은 사진이다. 왼쪽부터 사위, 딸, 로보 대통령(당시 국회의장). 사진 출처 온두라스 한인회 인터넷 카페 ☞ 사진 더 보기
포르피리오 로보 온두라스 대통령이 강영신 온두라스 한국학교 교장(57)에게 전화를 건 것은 지난달 18일. 이른 아침인 오전 7시였다.

“주한 온두라스대사를 맡아줬으면 합니다. 강 교장이라면 대사직을 훌륭히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강 씨는 얼떨떨했지만 대통령의 진심을 느꼈다. “저로서도 영광입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로부터 1주일 뒤인 지난달 25일 온두라스 정부는 우리 정부에 아그레망을 신청했다. 강 씨는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다음 달에 서울로 부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교민이 주한 외국대사로 오는 것은 처음이다.

강 씨는 6일 동아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로보 대통령이 오전 7시에 전화한 것은 내가 일찍 일어나는 걸 알고 한국인의 성실함을 존중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로보 대통령은 산림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1986년 강 씨의 남편인 송봉경 씨(2008년 작고)에게서 태권도를 배웠고, 수도 테구시갈파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던 송 씨 부부의 근면함을 우러러봤다. 2008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송 씨가 만약 생존해 있었다면 올해 1월 출범한 로보 정부에서 체육부 장관을 맡았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강 씨의 주한 대사 내정은 단지 로보 대통령과의 끈끈한 인연 때문만은 아니었다.

강 씨는 1976년 온두라스 육군사관학교 교수로 초빙된 남편을 따라 이듬해 온두라스로 이주했다. 1987년 온두라스 국적을 취득했지만 초등학교 교사 경험을 살려 테구시갈파에서 220km 떨어진 한국 교민 밀집지역 산페드로술라 시에서 16년째 한국학교를 운영하며 민족혼을 강조해 왔다.

강 씨의 현지 휴대전화 번호는 ‘1945’로 끝난다. 강 씨는 “한국이 해방된 해를 기리는 의미”라고 말했다. 강 씨가 교민 자녀, 교민과 현지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에게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것도 우리말과 역사다.

주온두라스 한국대사관은 2007년 처음 생겼다. 강 씨는 “그 이전에는 한국에 가려는 온두라스인의 비자 신청을 돕고 한국을 소개하는 일들을 교민들과 함께했다”고 말했다. 한국을 알리는 민간 외교관 역할도 한 셈이다. 남편이 운영하던 체육관에도 태극기와 온두라스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김순규 주온두라스 대사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강 씨는 온두라스에 가장 오래 산 교민으로서 여러 활동에 적극적인 교민사(史)의 산증인”이라고 말했다.

강 씨는 로보 대통령의 대사직 요청에 대해 “지난해 6월 군사정변 이후 사실상 국제적 고립 상태에 빠진 온두라스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한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려는 뜻이라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온두라스에서는 지난해 6월 군부쿠데타로 자유당 출신 대통령이 축출되고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국민당 출신의 로보 대통령이 당선됐지만 아직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사이 불안한 치안 때문에 한국 교민들이 많이 떠났고 현지 한국 업체 일부도 인근 국가로 옮겨갔다.

강 씨는 “현재 온두라스의 최대 무상원조국은 대만이지만 기술 전수 등 한국의 원조가 확대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유의 ‘까르르’ 웃음소리와 함께 각오를 전했다. “온두라스는 한국에 우호적이지만 한국은 온두라스를 잘 모릅니다. 대사로 임명되면 온두라스 제대로 알리기에 힘쓸 생각입니다.”

한편 강 씨와 함께 서울 성내초등학교에서 2년 동안 함께 교편을 잡았던 서울 원촌초등학교 안혜영 교사(57·여)는 “태권도복을 직접 만든다고 재봉질까지 배워서 온두라스로 갔던 열정적인 친구였다”며 “말수가 적어 조용했지만 영리하면서도 무척 성실했다”고 회상했다. 서울교대 동기인 서울 신상도초등학교 최성순 교장(57·여)은 “말투는 조곤조곤했지만 무척 재미있게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던 친구”라고 기억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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