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회 광풍불라… ‘정치교육감’될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11일 03시 00분


■ 6·2선거 선관위 비상

교육감-기초단체장 후보까지 첫 허용
정당이 간접지지땐 규제하기 어려워

후원회 1000개 훌쩍 넘을 듯… 선거비용 절반까지 모금가능
지역 유지 등 줄대기 우려

6·2지방선거부터 교육감과 기초단체장 후보가 선거운동 기간에 후원회를 운영할 수 있어 전국이 ‘후원회 광풍’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토착비리와 교육비리를 뿌리 뽑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에서 오히려 이들 비리의 싹이 뿌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존에는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후보만 후원회를 둘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부터 그 대상이 교육감과 기초단체장 후보로 확대됐다. 이들 후보는 후보 등록(5월 13, 14일) 이후 후원회를 열어 선거비용의 절반까지 모금할 수 있다.

여야는 지난해 말 공직선거법 개정 때 기초단체장 후보들도 후원회를 열 수 있도록 했다. 이를 두고 기초단체장들이 정당공천 배제를 요구하자 여야가 정당공천을 유지하기 위해 후원회를 허용하는 것으로 ‘바터’했다는 비판이 일각에서 제기됐다. 여야는 이어 지난달 지방자치법 개정 때엔 교육감 후보의 후원회 개최도 허용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지역교육장과 학교장 등의 모든 인사권을 쥐고 있는 교육감과 지방공무원의 인사권을 갖고 있는 기초단체장으로 후원회가 확대됨에 따라 후원회가 공무원 및 교직 관련 인사들의 줄 세우기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크다고 보고 대대적인 단속에 나설 방침이다.

법적으로 공무원은 후원금을 낼 수 없지만 지인을 통해 차명으로 후원한다면 이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 또 지역에서 많은 권한을 쥔 공무원이 특정 후보를 돕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후원금을 내도록 유도한다 해도 현행법상 이를 처벌할 수 있을지 애매하다. 정치자금법에서는 ‘고용관계를 이용하거나 타인의 의사를 억압하는 방법으로 기부를 알선할 수 없다’고만 규정돼 있다.

특히 기초단체장이 갖는 인허가권을 감안할 때 이른바 ‘업자들’이 각종 이권을 노리고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들과 친분을 쌓는 수단으로 후원회를 악용할 수 있어 후원회가 토착비리의 연결고리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하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토착기업이나 지역유지들이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의 후원회를 외면할 수 있겠느냐”며 “지역 건설업자부터 현수막 제작업자들에 이르기까지 대거 후원회로 몰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현재 한 사람당 기부할 수 있는 최대 후원금은 1회 500만 원(연간 2000만 원)으로 제한돼 있다. 하지만 통상 기업들은 여러 직원들 명의로 후원금을 쪼개 내면서 이 규정을 피하고 있어 후원금은 얼마든지 ‘뇌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게 선관위의 판단이다.

교원 인사권과 재정권을 갖게 되는 교육감 선거의 경우에도 특정 후보 당선을 원하는 학교장이나 교원, 교육단체 등이 학부모들에게 후원금 납부를 권유·종용하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선관위는 7월 28일 예정된 재·보궐 선거가 끝난 뒤 지방선거에서 사용한 정치자금을 집중 조사할 계획이다. 하지만 16개 광역단체장과 교육감, 228개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후보가 4명씩만 나와도 후원회가 1000개를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보여 선관위가 후원회 입출금 명세를 일일이 조사하기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다. 선관위가 최대 5억 원의 포상금을 내걸고 내부 고발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이유다.

이번 지방선거는 처음으로 ‘지역 소(小)통령’인 시도지사와 ‘교육 소통령’인 교육감 선거가 동시에 치러진다. 그 때문에 두 소통령 선거의 탈법적 결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현행 지방교육자치법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교육감 선거에 정당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했다. 특정 정당이나 정당 추천 후보가 특정 교육감 후보를 지지할 수 없으며, 반대로 특정 교육감 후보 역시 특정 정당의 지지를 받는다는 점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여야는 이미 시도지사와 교육감 후보를 사실상 ‘러닝메이트’로 지방선거를 치른다는 전략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선관위는 9일 시도지사나 교육감 후보의 선거 홍보물에 ‘러닝메이트’ 후보와 함께 찍은 사진을 실을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도지사와 교육감 후보가 서로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지 않은 채 함께 유세를 다닌다거나 특정 후보를 두고 “인품이 참 훌륭하다”는 식으로 간접 지지 의사를 나타내면 과연 이를 규제할 수 있는지 선관위조차 아직 분명한 견해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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