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풀린 선거문자… ‘스팸폭탄’ 변질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16일 03시 00분


선관위 불법 고발-경고 5배↑…시장 입후보예정자 첫 檢고발
‘자동전송’ 5회 제한에도 확인방법 없어 속수무책

광주시장 입후보 예정자인 A 씨의 측근이 광주 시민들에게 무차별로 발송한 문자메시지 중 하나.
광주시장 입후보 예정자인 A 씨의 측근이 광주 시민들에게 무차별로 발송한 문자메시지 중 하나.
《6·2 지방선거에서 광주시장 입후보 예정자인 A 씨의 측근은 1월 20일 A 씨의 출판기념회를 안내하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지역시민들에게 돌렸다. 이 문자메시지는 공교롭게도 선거부정감시단원의 휴대전화 에도 발송됐다.
선거관리위원회는 A 씨에게 ‘예비후보자로 등록하기 전에는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없으며 예비후보자 등록 후에도 후보자 본인만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는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A 씨의 측근은 지난달 23일까지 세 차례나 더 A 씨를 홍보하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무차별 발송했다. A 씨 측이 모두 네 번에 걸쳐 보낸 문자메시지는 모두 5587통에 달했다. 선관위는 지속적이고 광범위하게 불법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고 A 씨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지금까지 지방선거에서 문자메시지 발송과 관련해 후보자가 검찰에 고발된 것은 A 씨가 처음이다.

지방선거를 앞둔 입후보자들의 ‘스팸 선거문자’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휴대전화가 대중화하면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자동으로 발송하는 시스템이 점점 발달되고, 비용도 저렴해졌기 때문이다. 이번 지방선거부터 예비후보자로 등록을 하면 유권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도록 허용된 것도 ‘스팸 선거문자’가 넘치는 한 원인이 됐다. 현행법에선 선거문자의 무차별 발송을 막기 위해 자동전송 시스템을 이용할 경우 횟수를 5회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어 단속망은 크게 구멍이 뚫린 상태다.

○ 불법 선거문자 발송 기승

서울 중구청은 지난해 11월 구민 3만7000여 명에게 ‘성동고 자율형공립고 선정! 우리 중구 명문학교 만들기의 결실입니다. 중구청장 정동일’이라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가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경찰은 정 구청장이 사전 선거운동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예비후보자로 등록하지 않고 문자메시지를 보냈거나 후보자 본인이 아닌 제3자가 문자메시지를 전송했다가 선관위로부터 고발 또는 경고조치를 받은 것은 모두 54건이다. 이는 2006년 4회 지방선거 때(10건)와 비교해 5배나 늘어난 것이다. 특히 6·2 지방선거가 아직 78일이나 남아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선거에서 유난히 문자메시지 위반사례가 크게 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많은 유권자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문자메시지 자동발송 업체는 수십 곳에 이른다. 이들의 가격경쟁으로 문자메시지 한 통당 비용은 12원 수준이다. 1만 통을 보낸다고 해도 비용은 12만 원에 불과하다.

문자메시지 전송업체인 M사 관계자는 1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요즘 선거 관련 문자전송 문의가 하루 5∼10통씩 오고 있다”며 “주로 비용을 물어보고 중복발송을 피해 달라는 요청이 많다”고 말했다. 한 유권자에게 여러 차례 같은 내용의 문자를 중복발송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또 “여러 문자 전송업체가 ‘선거 대목’을 잡기 위해 텔레마케터를 고용해 선거사무실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펴고 있다”고 전했다.

○ 자동전송 횟수 제한 지켜질까

예비후보자가 직접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엔 아무런 제약이 없다. 메시지 내용에 상대 후보에 대한 비방이나 허위사실만 포함하지 않으면 된다. 이는 정치 신인들이 자신을 적극 알릴 수 있도록 한 예비후보자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다. 다만 공직선거법에선 투표일까지 자동전송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는 횟수를 5번 이내로 제한했다. 유권자들의 ‘선거문자 스트레스’를 막기 위해서다.

문제는 문자메시지를 후보자가 직접 보냈는지, 아니면 자동전송 시스템을 이용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선관위가 단속의 성과를 올리기 위해선 상대 후보의 제보나 내부 고발자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자동전송 여부를 당장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선거기간이 끝난 뒤 회계장부 실사 과정에서 선거비용 사용 명세를 꼼꼼히 점검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현행법이 사문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동전송 시스템을 이용할 경우 문자메시지 안에 ‘이 문자는 자동전송 시스템을 이용해 전송됐다’는 표시를 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