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한나라 법원제도 개선안에 강력 반발
“대법원장 인사권 축소 등 삼권분립 침해… 위헌 소지”
여권의 사법개혁과 관련해 박일환 법원행정처장이 1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회견장에서 성명을 발표하며 유감을 표시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한나라당이 대법관의 수를 늘리고 법관인사위원회에 외부인사를 참여토록 하는 등 대법원장의 권한과 법관의 재량을 크게 축소하는 방향의 법원제도 개선방안을 내놓은 데 대해 대법원이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대법원이 정치권의 제도 개선 논의에 강한 톤으로 비판하고 나선 것은 그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그래서 그동안 껄끄러웠던 이용훈 대법원장 체제의 사법부와 현 여권이 이렇다 할 타협점을 찾지 못할 때에는 정면충돌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 “사법부 자율성 존중해야”
박일환 법원행정처장은 18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3층 회견장에서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최근의 사법제도 개선 논의는 개별적 주장의 당부를 굳이 따질 것 없이 사법부를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는 진행방식 자체만으로도 매우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박 처장은 “사법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심마저 잃은 이런 처사는 일류 국가를 지향하는 우리나라의 품격에도 어울리지 않는다”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또 박 처장은 “최고 법원의 적정한 구성과 사법부의 자율적 인사운영은 사법부가 독립성을 지키고 헌법상 책무를 다하기 위한 필요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라며 “사건의 심리방식과 양형은 법관의 본질적 직무영역에 속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법제도 개선 논의는 마땅히 사법제도의 운영을 책임지는 사법부가 주체가 돼야 한다”며 “국회나 행정부가 사법제도 개선을 논의할 때도 삼권분립의 대원칙과 헌법이 보장한 사법부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처장은 “지금 거론되고 있는 여러 문제점은 이미 사법부 자체적으로 연구와 논의가 진행 중이며 조만간 그 결과를 공표할 것”이라며 “이를 기초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사법제도 개선의 올바른 방향”이라고 덧붙였다. ○ ‘법관 인사권’ 문제가 갈등의 핵심
그동안 침묵을 지켜온 대법원이 공개 성명을 낸 데에는 한나라당이 17일 내놓은 법원제도 개선 방안에 대한 강한 불만이 깔려 있다. 법원이 철저하게 배제된 채 진행되는 논의 과정도 문제지만, 법관 인사권을 침해하는 등 헌법에 규정된 삼권분립의 원칙을 근본적으로 침해하고 있다는 게 법원 내부의 시각이다. 한나라당은 법관인사위원회에 법관 3명 외에 법무부 장관, 대한변호사협회장, 전국로스쿨협의회장이 각각 2명씩 추천한 6명의 외부인사를 참여시키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 경우 외부인사가 다수가 되기 때문에 그동안 대법원장이 독자적으로 행사해온 법관 인사권을 빼앗기게 된다. 현재의 법관인사위원회는 대법원장의 자문기구 성격으로 3분의 1가량만 외부인사가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기구에 법관의 보직, 전보 등 인사에 대한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은 대법원장에게 법관 인사권을 부여한 헌법에 반한다는 것이다.
양형기준법을 제정하고 현재 대법원 산하기구인 양형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들겠다는 한나라당의 구상도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대법원은 우려하고 있다.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일뿐만 아니라 양형도 재판의 본질적 부분이므로, 여기에 과도한 제한을 두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 한명숙 재판에도 영향 미칠까
법원과 현 여권 간의 갈등은 올해 초부터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의 국회 폭력 사건과 MBC PD수첩 사건 무죄 판결 등이 잇따라 나오면서 촉발됐다. 한나라당은 “사법부의 권한이 비대해졌지만 아무런 견제를 받고 있지 않다”며 법원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고 사법제도 개혁을 내세워 ‘법원 힘빼기’에 나섰다. 이에 법원은 최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시국선언 사건을 재정합의부에 회부하고, ‘우리법연구회’를 비롯한 법관의 단체활동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이는 등 나름대로 외부의 비판을 수용하는 모양새를 갖춰왔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이 일방적으로 법원 권한 축소 방안을 내놓자 법원 내부에서는 “여당의 ‘법원 길들이기’에 더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한편 정치권 안팎에서는 법원과 한나라당의 갈등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뇌물수수 의혹 재판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사법개혁 논의와 재판은 별개의 문제지만, 법원 내부에 현 여권에 대한 반감이 형성되면 한 전 총리 재판 결과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