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395m. 고지는 그리 높지 않았다. 전투는 불과 열흘이었지만 쏟아진 포탄은 27만5000여 발. 중공군 사상자 1만여 명, 국군 사상자 3500여 명. 무수히 쏟아진 포탄으로 고지의 표면은 1m나 파헤쳐졌고 시린 상처처럼 흰 흙이 드러났다. 위에서 바라보니 마치 백마와 같았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백마고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0월의 일이다.
6·25전쟁 최대 격전지였던 강원 철원군, 그곳에서도 가장 전투가 치열했던 철원읍 대마리 백마고지.
18일 오후 그 고지 앞에 섰다. 민통선(민간인통제구역) 바로 앞 백마고지 전적기념관이다. 남녘에서 매화, 산수유 소식이 올라오고 있지만 이곳은 아직도 영하의 찬바람이다. 평지 위로 불쑥 솟아오른 뭉툭한 고지가 역사의 응어리처럼 묵직하게 다가왔다. 백마고지 주위로 남방한계선, 군사분계선, 북방한계선 그리고 북한 땅 철원이 차례로 펼쳐졌다. 고지 뒤편으로 북한 고암산의 김일성 고지도 눈에 들어왔다.
백마고지 서쪽 민통선 내부의 경기 연천군 열쇠전망대와 국군 감시초소(GP). 남방한계선 철책선 너머 비무장지대(DMZ)의 풍경은 광활함 그 자체였다. 구불구불 겹겹이 둘러싸인 능선들. 그건 숱한 시련을 겪어야 했던 우리 민족의 굴곡처럼 보였다.
6·25전쟁이 발발한 지 60년을 맞았다. 그 전쟁의 상흔은 아직도 국토의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다. 한반도 허리춤을 가로지르는 분단의 상징 DMZ와 주변 민통선 지역엔 그 상처가 더욱 깊다.
동아일보는 155마일(248km)에 걸친 민통선 내부와 DMZ를 넘나들며 그 상흔을 따라가는 기획을 마련한다. 6·25전쟁 최대 격전지였던 강원 철원지역의 중부전선, 수도 서울과 북한 땅 개성을 잇는 요충지였던 경기 파주 지역의 서부전선, 최북단에서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강원 양구 지역의 동부전선이다.
DMZ와 민통선. 그곳은 분명 우리 현대사의 쓰라린 상처다. 하지만 거기엔 조금씩 희망이 자라고 있다. 열쇠전망대 앞 DMZ에 펼쳐진 겹겹의 능선은 시련에 굴하지 않았던 우리 민족의 꿈틀거림이었다. 이번 기획은 분단과 정쟁의 상처를 넘어 통일의 희망을 찾아가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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