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지방선거를 70여 일 앞두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역할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지원유세에 나설 경우 한나라당이 열세에 놓여 있는 충청권에서 반전이 가능하고 영남에서도 미래희망연대(옛 친박연대)의 바람을 잠재우며 안정적인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원유세 여부에 따라 지방선거의 판세가 요동칠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친박계의 출마 포기는 박심 때문?
박 전 대표는 이번 지방선거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측근을 통해 “공천심사위원회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됐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 전부다.
그런데도 최근 친박(친박근혜)계인 김재원 전 의원과 서상기 안홍준 의원 등이 광역단체장 선거에 도전하려다 뜻을 접은 것을 놓고 박심을 둘러싼 관측이 무성해지고 있다. 일각에선 ‘박 전 대표가 도와주지 않을 것으로 보고 뜻을 접은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박 전 대표가 지난 재·보선 때와 달리 공천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 것은 주류 측과 대립각을 세우는 데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다만 김 전 의원은 박 전 대표로부터 대구시장 경선 출마 허락을 받았다가 몇몇 대구 친박계 의원들의 반대로 뜻을 접어 공천 과정에서의 박심의 존재를 엿볼 수 있다. 서, 안 의원의 불출마를 놓고도 당선 가능성에 따른 스스로의 판단이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이런 가운데 친박계에서는 대구는 친이(친이명박)계인 김범일 시장을 측면 지원하거나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최경수 현대증권 사장 등 새로운 인물을 영입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부산은 허남식 시장을, 경북은 김관용 지사를 지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경남은 친박계 후보를 내지 않는 대신 이방호 전 사무총장을 견제하는 데 힘을 모을 계획이다.
○ 박 전 대표의 도움이 절실한 선거
박 전 대표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치러진 5차례의 재·보궐선거 모두 당의 지원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선거는 당 지도부 중심으로 치러야 한다”는 게 명분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지방선거는 전국에 걸쳐 치러져 당이 총력전을 펴는 데다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까지 있어 선거 결과가 향후 정국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정부와 당의 명운을 결정지을 선거에 지도부가 아니라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더구나 차기 대선에서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는 충청권의 지방정부가 민주당과 자유선진당에 넘어가는 것도 대선주자인 그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 충청권에서 박 전 대표가 본격적인 지원활동에 나선다면 친박계로 분류되는 박성효 대전시장, 이완구 전 충남지사, 정우택 충북지사의 재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충청권에서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1월 말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에서 47.7%에 달하는 등 매우 높은 편이다.
만약 여당이 패배해 정부와 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야당이 반사이익을 챙길 경우 야당의 차기 주자를 배양할 여건을 성숙시킬 수도 있다. 박 전 대표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미래희망연대가 영남과 충청권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당선되는 상황도 박 전 대표에게 달갑지 않은 일이다. 실제 친박(친박근혜)계 내부에서는 한나라당 후보가 미래희망연대 후보에게 패배할 경우 박 전 대표에게 책임론이 전가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 친이 “박 전 대표 스스로를 위해서도 나서야”
당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가 선거 지원을 통해 세종시 원안 고수로 잃은 당내 지지세를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친이계 의원들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는 카드로도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친이계 핵심 의원들은 세종시 문제에 대한 박 전 대표의 태도에 크게 실망하며 대안을 찾기 위해 물밑 작업을 벌여 왔다.
정두언 지방선거기획위원장은 통화에서 “박 전 대표가 이전 선거 때와는 달리 역할을 해 줄 것으로 본다”며 “대선 때문에라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친이계 재선 의원은 “박 전 대표가 자신의 대권을 위해서만 움직이고 있다는 주류 측의 생각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이번 지방선거에는 꼭 나서줘야 한다”고 말했다.
○ 친박 “정치 상황 따라 지원할 수도”
친박계 의원들도 이전 재·보선과는 달리 박 전 대표의 지원 가능성을 유연하게 보고 있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은 21일 통화에서 “박 전 대표가 ‘재·보선은 지도부 위주로 치르는 게 맞다’고 했지만 지방선거는 다르지 않으냐”며 “박 전 대표가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유정복 의원은 “예상하기 어렵다”면서도 “지방선거는 전국 단위의 큰 선거니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선동 의원은 “대다수 친박계 의원들이 아직 그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서울의 한 친박계 초선 의원은 “박 전 대표가 친박계 인사의 당내 경선도 지원하지 않겠다는 뜻을 보였는데 지방선거에 나서겠느냐. 이미 정리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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