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존자들이 전하는 사고상황샤워하다 ‘쾅’ 암흑천지로“침몰시간 남았다 침착하라” 선임병 지시따라 갑판으로
국군수도병원에 입원한 생존자들은 면회 온 가족들을 통해 천안함의 침몰 순간을 생생하게 전했다.
해군 육현진 하사는 26일 오후 일과를 마치고 평소처럼 함체 후미에 있는 체력단련실에 운동을 하러 갈까 하다가 마음을 바꿔 그냥 자기로 했다. 육 하사는 배 앞쪽에 있는 침실로 가 바로 누웠다.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안경도 벗어놓았다.
오후 9시 반경 순식간에 배가 크게 흔들렸다. 급히 손을 뻗어 안경을 잡으려 했지만 육 하사는 잡지 못했다. 주변은 갑자기 캄캄해졌다. 육 하사는 늘 다니던 길의 벽을 무의식적으로 더듬어 갑판 쪽으로 올라갔다. 주변에서 “나와”라고 소리쳤다.
갑판 위에서는 선임 부사관들이 “저체온증으로 죽을 수 있으니 절대 물에 뛰어내리지 마라”라고 했다. 바닷바람에 몸이 덜덜 떨렸다. 부사관들과 사병들은 서로 몸을 손으로 비비고 마사지를 하며 체온을 유지했다.
구조하러 온 해경 보트에 올라타자 출렁이는 바닷물이 보트 안으로 넘어 들어왔다. 육 하사는 이때 죽음을 실감했다. 만약 그날 저녁 침실이 아니라 체력단련실이 있는 함미 쪽으로 갔더라면…. 육 하사는 현재 가벼운 타박상만 입고 국군수도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육 하사는 어머니 김모 씨(43)를 통해 이처럼 다급했던 사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입대한 지 100일도 안 된 천안함 승조원 이은수 이병(21)은 26일 일과를 마치고 갑판 밑 목욕실에서 샤워 중이었다. 오후 9시 반경 갑자기 ‘쾅’ 하는 소리가 나더니 몸이 공중에 붕 떴다. 사방은 캄캄해졌다. 평소 쓰던 안경도 찾을 수 없었다. 바닥에 쓰러진 이 이병은 엉금엉금 기어서 목욕실을 빠져나왔다.
선임병들이 이 이병에게 대강 옷을 입히고 담요를 가져다 덮어주었다. 선임병들은 이 이병과 빨래하고 있던 다른 이병의 손을 이끌고 갑판 위로 올라갔다. 갑판 위에는 선실에서 황급히 탈출한 다른 병사 수십 명이 있었다. 일부가 바다로 뛰어내리려 했으나 선임병들이 “아직 가라앉으려면 시간이 남았다. 침착해라. 모두 구명조끼를 입고 구조를 기다려라”라고 지시했다.
구조대가 큰 배를 이끌고 천안함 근처로 다가왔다. 그러나 배가 너무 커서 천안함 가까이 다가오면 충돌할 위험이 있다며 선임병들이 돌려보냈다. 얼마 후 해경선이 왔고 해경이 건네준 소방호스를 잡고 갑판 위에 있던 생존자 수십 명이 침착하게 탈출에 성공했다. 이 이병은 곧바로 해군 제2함대 사령부로 이송돼 1차 진료를 받고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됐다. 다행히 큰 상처는 없었다면서 아버지 이윤원 씨(50)가 이 이병의 말을 전했다.
10월 전역 예정인 신은총 하사(24)는 당시 당직 근무를 하며 갑판에서 가까운 상황실에 있었다. 갑자기 ‘꽝’ 소리와 함께 선체가 기울어지면서 상황실의 물건들이 와르르 떨어졌다. 신 하사는 떨어진 물건에 머리 등을 다쳤다. 안경도 충격으로 바닥에 떨어뜨려 앞을 볼 수 없었다. 옆에 있던 중사가 자기 안경을 벗어줘 신 하사는 갑판까지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성남=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 동영상 = 침몰 초계함 실종자 가족들의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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