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靑 ‘기뢰說’ 이래도 저래도 고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30일 03시 00분


[‘판도라의 상자’ 천안함]

靑 “안보회의 당분간 없다”
기뢰 폭발로 밝혀져도 北개입 여부 확인 힘들어
현실적 한계 반영한 듯

軍, 北연루설에 무게

北 개입 돼야 ‘책임’ 덜어… 자체사고땐 문책 ‘후폭풍’


천안함 함미의 위치가 확인되고 침몰 원인이 기뢰 때문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정부와 군, 정치권 사이에 미묘한 간극이 감지되고 있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29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북한 기뢰가 흘러 들어왔을 개연성을 언급했다. 반면 청와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며 시종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는 모습이다.

청와대는 천안함 사고 직후 4차례 개최했던 안보관계장관회의를 당분간 추가 소집할 계획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은 “사실상 오늘부터는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현황과 관련해 실시간 보고를 받는 상시점검체계를 유지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외교안보라인의 한 참모는 “청와대가 ‘안보 대응’에서 ‘사건 수습’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음을 뜻한다”며 “북의 위협이나 테러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생존자 구조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런 판단은 지금까지의 정황상 북의 직접적인 개입을 추론하기 어려운 데 근거한다. 더욱이 기뢰로 인한 폭발로 밝혀지더라도 해당 기뢰가 북한 것이라는 점을 입증하기 쉽지 않다는 현실적 한계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남북관계를 감안해 서둘러 발을 빼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하고 있다. 북한 연루 개연성이 높아질수록 보수층의 반발이 커지게 되고, 이에 따라 정부가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하는 쪽으로 상황이 전개되는 데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청와대가 집권 3년차를 맞아 남북관계의 전기를 모색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 연루 가능성을 조기에 차단하려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는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정부가 어떻게 자세한 상황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의 개입 가능성은 낮다’는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북한 연루 가능성을 배제한 게 아니다. 사실에 기초한 정확한 원인 규명이 중요하다”며 섣부른 예단을 경계했다.

군은 공식적으로는 청와대와 같은 견해를 보이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북한 연루설에도 비중을 두는 분위기다. 북한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번 사고에 관련돼 있다는 게 드러나면 군의 책임을 덜 수 있는 데다 내부의 기강 해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 경우 실종된 병사들이 숨진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단순 사고사가 아닌 북한의 공격에 따른 명예로운 순직으로 남을 수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치권도 천안함 침몰 원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민주당은 북한 공격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이다. 대신 군 내부의 문제로 밝혀질 경우 총체적인 군기 문란을 지적할 태세다. 이강래 원내대표는 29일 긴급 원내대책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네 차례나 안보장관회의를 개최했지만 그 어떤 것도 국민에게 밝히지 못하는 속사정이 무엇이냐”며 국회 내 진상규명특위가 구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군 자체 문제이든, 북한의 소행이든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라는 분위기이지만 아무래도 집권당인 만큼 군기 문제로 비화되는 것을 더 꺼리는 분위기다. 현재로선 ‘판도라의 상자’인 천안함이 인양되더라도 사건 규명이 장기 미제가 될 개연성도 있는 만큼 여론의 흐름에 따라 청와대와 군, 정치권의 이해득실이나 책임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 동영상 = “장례용 천막아니냐”, 실종자 가족들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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