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행정부 이후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미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모두 민간단체가 초청한 뉴욕지역 토론회 참석 형식이었지만, 북-미 핵 협상을 주관해 온 김 부상의 방미는 교착 상태였던 북핵 6자회담의 진척을 위한 돌파구로 해석돼 왔다.
김 부상은 올해 초부터 미국 민간단체의 초청을 받아 미국을 방문하겠다며 비자 발급을 요청했지만 미국은 이를 계속 거부해왔다. 하지만 최근 북-미 간에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전제로 한 김 부상의 방미와 이를 계기로 북-미 추가접촉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천안함 침몰사건 이후 한미 간에 의견을 모은 것으로 12일 알려진 ‘북-미 접촉 속도 조절’ 방침에 따라 김 부상에 대한 미국 정부의 비자 발급은 당분간 이뤄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천안함 침몰사건이라는 휘발성 강한 돌발사건에 대한 한미 양국의 공감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미 양국이 북-미 접촉 속도 조절에 동의한 것은 무엇보다 양국 군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천안함 침몰사건 조사 과정에서 북한 관련설이 대두될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5월 중으로 예상되는 최종 조사결과 발표 때 ‘북한 개입’까지는 아니더라도 ‘북한 의심징후’가 나올 경우 진전된 북-미 관계가 부담스러운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핵심 당국자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경솔하게 하지 말고 조심하자는 뜻”이라고 말했다. 다른 당국자는 “북-미, 북-중 관계가 진척돼 6자회담 진전 무드가 조성된 가운데 북한 연관성이 의심된다면 한국 정부가 소외된 듯이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미 정부의 북-미 접촉 속도 조절 결정에 대해서는 해석이 엇갈린다. 정부 당국자들은 “단순히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는다는 차원”이라며 과도한 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한국 정부가 침몰 원인으로 북한의 공격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한 정부 당국자는 “워싱턴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나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도 북-미 접촉이 속도를 내는 데 걸림돌이 됐다”고 설명했다. 어차피 이런 회의체를 통해 북한과 이란의 핵개발 시도가 규탄 대상이 될 상황에서 굳이 북-미 관계 개선을 서두를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천안함 침몰사건 직후부터 북한의 개입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워온 정부가 그동안 미국 등 각국의 전문가를 합동조사에 참여시키는 등 북한의 개입을 염두에 둔 행보를 서둘러왔다는 점에서 천안함 침몰 원인 규명 이후를 겨냥한 포석 아니냐는 관측이 많다.
한편 버락 오바마 정부가 이명박 정부의 요청을 수용한 것을 두고 2002년 제2차 연평해전 당시 한미 간에 보였던 불협화음과는 대조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002년 6월 29일 벌어진 2차 연평해전 직후 김대중 정부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7월 10일로 예정된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의 평양 방문을 늦추지 말아 달라”며 햇볕정책의 기조를 깨지 말 것을 요청했지만 부시 행정부는 이를 거부한 바 있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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