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장급 등 57명 거론에 ‘특수통’ 채동욱 고검장 투입
연루자 거명 감찰부는 배제
“시효와 상관없이 조사-조치” 6월 대규모 인사태풍 예고
굳은 표정의 검찰총장 김준규 검찰총장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공안부장검사 회의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최근 ‘검사 향응’ 리스트가 불거진 탓인지 김 총장의 표정이 어둡다. 홍진환 기자
대검찰청이 21일 전현직 검사들이 부산지역 건설업자에게서 향응 및 성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 조사를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진상규명위원회에 맡긴 것은 검찰사상 최대의 ‘스폰서 스캔들’로 번진 이번 사안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번 사건이 과거의 법조비리 사건처럼 사건 수임이나 청탁이 개입된 뇌물 사건은 아니지만 검사가 건설업자와 부적절한 ‘스폰서’ 관계를 맺었다는 의혹만으로도 검찰조직의 명예와 수사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크게 훼손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실명 거론자만 57명, 조사에 시간 걸릴 듯
진상규명위는 8, 9명가량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이 중 3분의 2 이상은 법조계와 학계, 언론계, 시민단체 등 외부인사가 맡을 예정이다. 검찰 내부인사가 조사 대상인 만큼 외부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특히 검찰은 국민적 신망이 두터운 명망가를 위원장으로 영입하기로 하고 후보군 선정에 고심하고 있다. 진상조사위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고검 청사 안에 사무실을 설치할 계획이다.
진상규명위 아래서 실무조사를 맡을 진상조사단의 단장은 검찰 내의 ‘특별수사통’으로 꼽히는 채동욱 대전고검장이 맡았다. 현직 검사장급이 2명 포함돼 있는 만큼 고검장급에게 실무조사단장을 맡긴 것. 진상조사단에는 우선 2, 3명의 검사가 합류할 계획이다. 한승철 대검 감찰부장이 이번 의혹에 휘말린 점을 감안해 대검 감찰부 소속 검사들은 배제할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지역 건설업자 정모 씨가 작성한 문건에 실명으로 등장하는 전현직 검사가 57명에 이르고, 이름 없이 소속 검찰청과 직책이 표시된 검사들까지 합하면 조사대상자가 100여 명에 이르러 조사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진상규명위의 이번 조사는 1999년 1월 판검사와 법원·검찰 직원, 경찰관 등 200여 명이 대전의 이종기 변호사에게 사건수임 소개비를 받은 장부가 공개돼 파문을 일으켰던 ‘대전 법조비리’ 사건 이후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 대규모 인사태풍 불어닥칠 듯
정 씨가 작성한 문건에 나오는 향응 접대 사례는 검찰 내부 기준에 따를 경우 대부분 징계시효 3년을 넘긴 사안이다. 하지만 검찰 수뇌부는 시효가 남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진상을 밝혀 최대한 강하게 징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검찰 고위 간부는 “이번 사건은 옛날 일이라고 해서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라며 “시효와 상관없이 무조건 사실관계를 확인해 응분의 조치를 취하는 것만이 이번 사태를 헤쳐 나갈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조사결과 징계대상이 많으면 검찰 정기인사 시기가 6월 지방선거 직후로 앞당겨지면서 대규모 인사태풍이 불 개연성도 있다.
한편 검찰 내부에서는 “문건 내용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아 정 씨 주장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정 씨가 2006년 부산지검 공판부에 근무할 때 접대를 했다는 A 검사는 당시 서울에 근무하고 있었으며, 문건에 적힌 휴대전화 번호도 틀린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정 씨가 2003년 이후 접대과정에서 사용했다고 제시한 수표 중 일부는 이미 2001년 국민은행에 합병돼 간판을 내린 주택은행에서 발행된 수표라는 점도 미심쩍은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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