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23일 금강산 관광 사업을 사실상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개성공단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았다. 앞서 북한은 8일 남한 정부 소유 부동산에 대한 동결 조치를 발표하면서 “개성공업지구 사업도 전면 재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한 바 있다.
이를 놓고 북한이 그나마 남북 간 연결고리 중 하나를 남겨둠으로써 남북 협의의 여지를 남겨놓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북한 당국이 4만2000여 명에 이르는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들의 ‘직장’을 박탈하는 조치를 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더 큰 부담이 될 것을 우려했을 수도 있다. 가뜩이나 식량난이 악화되는 가운데 개성공단 근로자들마저 실업자로 전락하고, 북한 전역에서 왔던 이들이 공단 폐쇄 후 남한의 우수한 기술에 관해 북한에 소문을 퍼뜨리면 체제 유지에도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발표에서 제외했을 뿐 북한이 추가 조치를 통해 개성공단 역시 문을 닫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담화가 “우리(북)의 응당한 조치에 대해 그 무슨 ‘강력한 대처’니 뭐니 하며 무분별하게 도전해 나올 경우 더욱 ‘무서운 차후 조치’가 뒤따를 것”이라고 밝힌 부분이 바로 개성공단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박임수 국방위원회 정책국장 등 북한 인사 8명이 19, 20일 개성공단을 시찰했다는 것이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북한은 2008년 11월에도 박 국장의 위치에 있던 김영철 당시 정책실장이 공단을 다녀간 뒤 12월 1일자로 육로통행 제한 및 차단조치를 취했다.
게다가 북한이 남측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삐라) 살포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는 점도 북한이 언제라도 개성공단을 닫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의 행보는 반드시 논리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단순한 보복 목적으로 움직이는 사례도 있기 때문에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쉽게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최대 위기 현대아산 “정부여, 도와주오” 2648억 손실… 월급도 못줘 “경협 유지 나서달라” 호소▼ 23일 북측이 금강산 관광지구 내 민간기업의 자산 동결과 인력 추방을 전격 발표함에 따라 현대아산은 1999년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현대아산은 이날 북측 담화문이 발표된 직후 장경작 사장 주재로 두 시간 넘게 긴급대책회의를 가졌다. 이후 현대아산은 공식 입장을 내고 “금강산관광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게 매우 유감스럽고 안타깝다”면서 이례적으로 북측에 대해 ‘부동산 몰수 및 동결 조치 철회’ ‘대화를 통한 해결’ 등 요구사항을 직설화법으로 표현했다. 현대아산은 “남북 간 평화와 협력에 기여해온 금강산관광을 중단시키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정부도 우리 기업들의 재산권 보호와 남북경제협력사업 유지에 적극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금강산 관광사업 계약의 원칙은 분쟁 시 ‘상호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라며 “금강산·개성사업소 등 현지 접촉 채널을 통해 북측에 계속해서 이러한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북측 조치에 대해 현대아산이 쓸 수 있는 대응 수단이 현실적으로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2008년 7월 박왕자 씨 피격사망사건 후 주력 사업인 대북관광이 중단되면서 현대아산의 경영은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1100명에 달하던 직원은 35% 수준인 384명(4월 현재)으로 줄었고, 남은 직원들의 월급도 삭감·유보됐다. 관광 중단으로 인한 매출 손실은 올 2월까지 약 2648억 원. 협력업체 손실까지 포함하면 그 액수는 3587억 원에 달한다.
현대아산은 그간 △평화생명지대 관광 개발 △금강산 예약관광객 모집 △자산매각 △유상증자 등 각종 자구책을 동원해 ‘연명’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 8월에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북한을 전격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을 하고 돌아와 직원들 사이에 ‘회사가 살아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감돌기도 했다.
그러나 대북관광 중단 상황은 계속됐고, 급기야 올 3월에는 조건식 사장이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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