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 기본부터 흔들 훈련장 부족해 횟수 줄이고 예산 없어 실탄사격 중단 떠나는 장교들 베테랑 조종사 집단 이직… 공군력 약화로 이어져 선배세대 역할은 ‘군인의 길’ 선택 격려하고 사회 존경 분위기 만들어야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은 재임 시절 군 지휘관들에게 ‘파이트 투나이트(Fight Tonight)’라는 말을 수도 없이 강조했다. ‘오늘 밤 당장 전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훈련을 실전처럼 강도 높게 하라’는 뜻으로, 주한미군의 구호(motto)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 현장은 거리가 멀다. 지휘관들은 훈련 중 사고가 생기는 것이 두려워 안전한 기본 훈련을 선호하고 있다. 자칫 사고가 나면 지휘관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심한 경우 보직 해임이 되고 진급 누락 사유가 된다. 강군을 만들겠다며 실전처럼 강도 높게 훈련을 시키다가 사고를 낸 지휘관보다는 안전을 앞세워 ‘살살’ 훈련시키는 지휘관이 진급에 훨씬 유리한 게 군의 현주소다.
예비역 장성들은 “군 전투력을 강화하기 위해 넘어야 할 과제가 첩첩산중”이라며 “군의 기본인 훈련부터 이렇게 흔들려서야 어찌 국민이 군을 믿을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 군의 기본은 실전 같은 훈련
한 예비역 해군 장성은 “해군의 경우 병력이 부족해 훈련이 형식적으로 흐를 수 있다”면서 “군함은 장비의 피로를 덜기 위해 경계, 정비, 훈련을 번갈아 하지만 병력이 부족해 훈련을 해야 할 인력이 경계를 서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경계 임무가 우선인 만큼 훈련을 형식적으로 끝낼 수 있다는 얘기다.
공군은 훈련 공역이 바다 위로 한정돼 훈련을 위해 동해나 서해로 멀리 나가야 한다. 공대지 실사격이 가능한 훈련장은 군산 앞바다에 있는 무인도인 직도가 유일하다. 대구 기지에서는 전투기들이 오후 10시가 넘으면 출격을 못 한다. 소음 민원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와 야간 비행을 안 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훈련 횟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육군도 예외가 아니다. 한정된 예산 때문에 실탄 사격은 가뭄에 콩 날 정도다. 고유가 시기가 도래하면 육군 기계화부대의 훈련은 중단되고, 전차가 나가야 할 훈련에 트럭이 나가 흉내만 내는 경우도 있다.
○ 군의 중추인 간부들이 떠나는 군
공군 조종사들의 민간항공사로의 대량 이직은 민간항공사들이 신규 조종사 채용 때 사실상 연령 제한을 하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됐다. 군 경력이 19년 6개월 이전인 조종사만 받기로 함에 따라 소령들이 한꺼번에 민간항공사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이직 조종사의 수는 꾸준히 늘어 2008년에는 145명이 군을 떠났다. 조종사들은 군에 남아도 진급이 어렵고 안정성도 떨어지기 때문에 이직한다고 말한다.
이들의 이직은 공군 전력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공군 관계자는 “제대하는 소령들은 비행시간 1000시간을 넘긴 베테랑 자원으로 어떤 임무를 맡겨도 수행이 가능하다”면서 “조종사 전력의 허리에 해당하는 이들의 집단 이직으로 공군력이 약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안정적으로 인력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전체 공군 전력에서 조종사가 70% 정도 있어야 하는데, 앞으로는 40%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한 기수에 60명 정도가 적정 수준이지만 어떤 기수는 조종사가 30명밖에 안 남았다”고 말했다.
공군에 따르면 군 조종사의 보수는 민간항공사의 72% 수준. 공군은 비행수당 등을 높이는 방법으로 이 비율을 2015년까지 85% 수준으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국민의 세금으로 사관학교를 다니고 군에서 조종 교육을 받은 조종사들이 정작 군이 필요한 시기에 자신의 이해만을 좇아 군을 떠나는 것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육군은 초급장교인 소위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군 복무기간이 대폭 줄어들면서 36개월을 근무해야 하는 학사장교 지원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최근 1, 2년 동안 학사장교는 지원 미달이었다. 육군 관계자는 “소대원들을 강하게 훈련시키는 것이 전투력의 뿌리인데 소대원들을 훈련시킬 소대장이 부족하고 수준이 떨어지면 전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해군 역시 함정을 운용할 기술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해군 함정은 오랜 장비운용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병사보다는 장교와 부사관이 더 많이 승선한다. 하지만 해군은 국방개혁 2020에 따라 장병 수를 4만1000명으로 묶어둔 채 전투력 향상을 위한 무기와 장비도입에 예산을 집중하기로 했다.
○ 국가적 격려와 사회적 존경 필요
예비역 장성들은 “민간 분야와 우수 인재를 놓고 군이 경쟁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이제는 군 선배들이 명예로운 ‘군인의 길’에 대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군인의 길을 선택한 이들에 대한 국가적 격려와 사회적 존경 분위기도 조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예비역 해군 장성은 “풍족하지는 못하지만 자부심과 명예를 먹고 사는 군을 선택하라는 메시지를 젊은 후배 장교들에게는 물론 젊은 세대에게 던져야 군이 활력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 공군 관계자는 전투기 조종사들의 집단 이직에 대해 “공군이 조종사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비전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고 자성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 도움말 주신 분 (가나다 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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