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외교안보라인의 고위 관계자는 5일 “정부는 이미 한중 정상회담 무렵 김 위원장의 방중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핵심 참모도 “(천안함 침몰 사건 전후부터) 죽 지켜봤는데 한중 정상회담 당시 우리 정부가 김 위원장의 방중 날짜까지 콕 짚어서 알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이 대통령이 상하이 방문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날인 2일 오전 청와대는 김 위원장이 3일 새벽쯤 중국 땅을 밟을 것이라는 구체적인 정보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국 정보당국의 KH-12 정찰위성 등으로 파악한 북한 내부 움직임, 주중한국대사관 및 휴민트(인적정보 수단) 등을 통한 첩보 등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중국 측은 한국 측에 김 위원장의 방중 사실을 통보하거나 귀띔해주지 않았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②정상회담 때 김정일 방중 우려 제기했나?
정부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국제 공동조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방중이 이뤄질 경우 한중회담 성과가 희석되고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한 물타기로 이어질 우려가 높다는 판단을 했다. 때문에 주중 대사관은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 방중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자는 주장을 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얘기해봐야 실익이 없고 외교관례에도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라 직접 언급하지 않고 천안함 사건 등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중국 측에 전달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위원장 방중 자체를 우리 정부가 막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서로 직접적인 말은 안했지만 김 위원장이 곧 방중 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정상회담이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③김정일 방중에 대해 비밀리에 항의했나?
김 위원장의 방중이 임박했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현실이 되자 정부 관계자들은 내심 매우 당혹스러워하며 불쾌해했다. 중국이 과거 김 위원장의 방중 때도 통보해주지 않은 전례에 비춰 공식 통보는 없을지라도 이번엔 한중회담 직후 이뤄지는 것이므로 최소한 언질이라도 해주길 내심 기대했던 것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남북한과 중국의 3각 관계에 대한 현실을 새삼 절감했다. 하지만 이를 드러내놓고 항의할 수도, 그렇다고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은 채 손 놓고 있을 수도 없었다. 청와대의 한 핵심 참모는 “중국도 북한과의 관계가 있으니…”라면서도 “사전에 한마디 정도는 해줬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 고위 관계자는 “따지고 보면 중국이 일정을 짜면서 김정일 방중을 한중 정상회담 뒤로 배치하고 천안함 사건에 애도를 표시한 것은 중국 나름대로의 배려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방중 전후 비공식 채널을 통해 중국 측에 항의 혹은 우려의 뜻을 전달한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복수의 청와대 관계자들은 “항의해서 될 일이냐”며 부인했다.
④외교부와 통일부의 항의는 돌출행동인가?
김 위원장의 방중에 대한 우리 정부의 공식 외교 행위는 3일 외교부의 장신썬(張흠森) 주한 중국대사 초치(招致·불러들임)였다. 장 대사 초치는 청와대와의 외교부의 사전협의를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비공개로 이뤄진 초치 사실을 외교부가 4일 언론에 공표했고 같은 날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부임 인사 차 들른 장 대사에게 공개적으로 ‘중국의 책임 있는 행동’을 강조하면서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우리 정부가 중국에 대해 공개적으로 항의 공세를 펴는 것처럼 비쳐지고 중국도 불쾌한 기색을 보이는 등 한중 갈등 기류가 고조되는 양상으로 전개됐다.
특히 ‘초치’는 독도 문제가 불거질 때 일본대사를 외교부로 불러들일 때 쓰던 용어로 ‘항의’의 뉘앙스가 깔려 있다. 청와대가 “항의가 아니다” “현 장관 건도 사전에 조율되지 않은 돌발 상황이다”며 사태 수습에 나선 것은 그 무렵이었다. 그러자 이번엔 통일부가 “덕담하고 사진만 찍고 헤어질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는 등 청와대와 외교부 통일부가 긴밀한 협조 체제를 구축하기는커녕 제각각 움직이는 난맥상을 드러냈다.
⑤정부가 황급히 진화에 나선 이유는?
청와대는 한중간의 외교적 갈등이 부각되자 열기를 식혀야 된다고 판단했다. 향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 국제무대에서의 천안함 문제 대응에 도움이 가장 절실한 중국과 감정적으로 대립각을 세워봐야 득이 될 게 없으므로 전략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왜 중국에 큰 소리를 못 치느냐’는 식의 감정적 대응을 해봐야 남는 게 없다”며 “이제부터 중국의 협조를 구하는 게 중요하다. 김 위원장이 북한으로 돌아간 뒤 경제지원 등과 관련해 중국이 북한에 뭘 요구했는지를 추가로 청취하고 대응방안을 짜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당당하고 논리적으로 불쾌감을 전달하는 것이 향후 중국이 북한 편으로 일방적으로 쏠리는 것을 견제하는 방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의 한 관계자도 “로우키만을 고수하기보다는 중국 측에 강한 압박을 제기해 중국의 향후 움직임을 신중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며 “다만 그런 과정을 지나치게 언론에 노출해 상대방을 필요 이상 자극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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