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속 챙기는 ‘토착세력’ 불필요한 수당 없애고 기본급 항목 재정비해야 비리 부르는 정치 입김 지역구의원과 파워게임 정당공천 배제 검토해야 재정난에도 통큰 씀씀이 경쟁시스템 도입해 교부세 차등지급 필요
《주민 수는 줄어드는데도 공무원 수는 늘어만 간다. 예산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면서 수천억 원이 들어가는 호화 청사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짓는 게 권력화된 지방행정의 현주소다. 갈수록 공고해지는 소지역 이기주의와 폐쇄적인 인사 교류 시스템도 지방행정의 권력화를 부추기고 있다. 지방행정을 현장에서 경험한 전직 단체장과 전문가들로부터 해결 방안을 들어봤다.》
○ 공무원 잇속 챙기기와 결합한 소지역 이기주의
공무원 봉급은 2년째 동결됐지만 상당수 지방자치단체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복지포인트를 대폭 인상해 ‘편법 인상’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서 슬그머니 잇속 챙기기에 나서는 모습은 호화 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자신들이 근무하는 건물을 좀 더 크고 화려하게 꾸미고 싶다는 지자체 공무원들과 치적을 내세우고 싶어하는 시장, 군수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강은순 인제대 겸임교수(60·전 경남 거창군 부군수)는 “단체장들이 치적을 내세우기 위해 경쟁적으로 호화 청사 짓기에 나서고 있다”며 “주민 복지를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행정안전부가 청사 건립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만 재정과 인구, 기존 청사, 개발 여건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더욱 세밀한 청사 건립 기준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민간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복지포인트 등 공무원들의 수당 중 필요한 부분은 기본급에 포함시키고 불필요한 항목을 없애야 투명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제안했다.
폐쇄적인 인사 시스템이 공무원들의 잇속 챙기기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유승우 강남대 행정학과 석좌교수(62·전 경기 이천시장)는 “공무원 조직의 폐쇄적 인사 교류와 소지역주의가 지방자치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인사 교류가 되지 않다 보니 지역에 순혈주의가 깊이 뿌리내리면서 공무원들도 패거리 문화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는 것.
일선 시군구가 폐쇄적 인사 시스템으로 운영되다 보니 고급 인력이라 할 수 있는 행정고시 출신은 중앙부처만 선호하고 말초신경격인 지자체를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문제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미국과 일본에서는 중앙행정기관과 지자체 간 교류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을 참고할 만하다”고 말했다.
○ 지방자치 훼손하는 정치 입김
권두현 새마을운동중앙회 사무총장(62·전 경기도 행정2부지사)은 “정당에서 기초 단체장까지 공천하기 때문에 지방자치가 정치에 휘둘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 내 토착 정치세력이 시장 군수 선출 권한을 행사하면서 돈으로 공천을 따내는 부작용도 생기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문제는 결국 단체장이 뇌물 수수 등의 비리를 저지르는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단체장이 선거로 선출되면서 지역구 국회의원과 갈등을 빚는 것도 지방자치 활성화의 저해 요소로 지적된다. 둘 다 동일 지역 유권자들에게 표를 얻어 선출직 공무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지역구 국회의원이 단체장 공천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파워게임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 권 사무총장은 중앙당에서 객관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단체장을 공천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창원 교수도 “보수냐 진보냐를 따질 필요 없는 생활 정책을 추진하는 구청장과 지방의원까지 정치에 영향을 받게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며 “기초단체만이라도 정당공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세수 확보 없이 지방자치 불가능
군(郡) 단위 지역의 70%가량이 자체 세수입만으로는 공무원 인건비조차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재정 상태가 열악한 것이 현실이다.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중앙정부가 일률적으로 나눠주는 보조금이나, 지급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되는 특별교부세를 정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지방정부가 세수입을 늘리는 시스템을 갖춰 성과를 내면 그에 비례해 특별교부세를 차등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래야 경쟁시스템이 도입돼 지자체들도 수입원 창출에 나서고 그에 따른 지방경제 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
김봉렬 전 전남 영광군수(77)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난 해소를 위한 세원 확보 방안이 법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김 전 군수는 “체납세 징수는 미봉책에 불과하기 때문에 광역단체에 배분되는 지방소비세를 기초자치단체에 일정 비율 환원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자체들이 재정난을 겪으면서도 소모적인 행사나 축제 개최에 많은 예산을 쓰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김 전 군수는 “일부 지자체가 일회성 축제를 줄이고 있어 다행”이라며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는 행사는 인근 지자체와 손을 잡고 규모를 키워갈 필요도 있다”고 제안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예산을 줄이고 지역 경제를 살려 부족한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수원=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창원=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경기 고양시는 올해 1월 행정안전부 감사담당관실에서 근무하던 사무관을 시 감사담당관으로 영입했다. 자체 감사로 인한 ‘제 식구 봐주기’의 소지를 막기 위해 감사담당관 직위를 개방해 외부 전문가를 채용한 것이다. 외부 전문가 채용 이후 “온정주의식 업무 태도가 많이 사라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지방행정의 발목을 잡는 고질적인 문제점 중 하나가 부실한 자체 감사다. 감사기구가 별도의 독립된 부서로 설치되지 않은 사례가 많고, 감사부서 근무가 순환보직 형태여서 감사의 전문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국회 입법조사처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의 16개 시도를 비롯해 전국 지자체 감사기구는 모두 기관장이나 부기관장, 실국장 등 부서장에게 소속돼 있다. 감사인력의 인사권이 기관장 등 상급자에게 달려 있다는 얘기다. 입법조사처가 2, 3월 전국의 7개 지자체를 방문 조사한 결과 7곳 모두 감사기구가 독립부서가 아니라 다른 부서장에게 소속돼 있었다. 전남의 A시는 부시장 소속의 감사실을 운영하고 있고, 대전의 B구는 자치행정국장 밑에 기획감사실을 두고 있다.
감사인력의 전문성 부족도 자체감사 부실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입법조사처는 “지자체 감사부서의 평균 재임기간이 2∼3년에 불과하며 감사부서 근무경력이 인사상 불이익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아 기피현상도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이유로 지자체 감사에 따른 자체 징계는 미미한 수준이다. 입법조사처가 방문 조사한 7개 지자체의 지난해 감사 결과 파면이나 해임, 정직 등의 중징계를 내린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견책이나 감봉 등의 경징계 사례도 1곳을 제외하고는 없었으며 대부분 훈계나 주의에 그쳤다.
입법조사처는 감사기구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모든 지자체에 감사업무 전담기구를 만들고 감사부서의 업무와 예산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지방의 감사 수준을 높이기 위해 지방 감사인력 전체의 30%를 중앙정부 근무경력이 있는 인사로 충당하는 프랑스 방식을 도입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변호사나 공인회계사 등 전문가와 감사계약을 해 지자체 감사를 벌이는 일본의 외부감사제도 검토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고양=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 지방의회 견제기능 제대로 작동 안해 ▼ 광역의회 예결산안 원안대로 통과 48.8%
1일 ‘3억 원 별장 뇌물’ 혐의로 구속된 민종기 충남 당진군수에 대한 경보음은 일찌감치 나왔다. 이미 지난해 12월 일부 지역언론은 ‘군수가 건설업체에 관급공사를 몰아주는 등 특혜를 준 대가로 별장을 받았다’는 의혹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군 행정을 면밀히 감시해야 할 군의회는 이 사안에 대해 감사는커녕 단 한 번도 질의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의 비리가 잇따라 터져 나오자 지방의회의 부실한 감시기능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6일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지방의회의 재정 감독권 강화방안’ 보고서에도 지방의회의 지자체에 대한 견제기능이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자체가 제출한 예결산안이 지방의회에서 삭감 등 수정 없이 ‘무사통과’하는 비율이 높은 게 대표적 사례로 꼽혔다. 2006년부터 현재까지 전국 광역의회의 예결산안 원안 가결률은 48.8%였다. 예결산안의 절반을 그냥 통과시켜 준 셈이다. 특히 논산시의회는 논산시가 의회에 제출한 23건의 예결산안 중 18건을 원안대로 통과시켜 원안 가결률이 78.3%나 됐다.
지방의회가 지자체를 상대로 하는 ‘행정사무감사’에서 지적된 사안도 제대로 시정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나주시의회의 경우 2006년부터 현재까지 나주시에 대해 행정사무감사를 벌여 1456건을 지적했으나 시정이 안 된 것이 518건(35.6%)에 달했다.
지방의회의 감시기능이 이처럼 약화된 원인에 대해 입법조사처는 짧은 예산안 심의 및 행정사무감사 기간도 한몫한다고 보고 있다. 지방의회의 실질적인 예산안 심의 기간이 15일 정도, 행정사무감사는 기초의회의 경우 7일에 불과해 제대로 일을 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또 지방의회 사무직원은 지자체장이 임명하고 지자체에서 순환보직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지방의회의 독립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입법조사처는 “지방의회 공무원에 대한 인사권을 지방의회 의장에게 부여하고 전문위원을 증원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예산 심의 기간을 늘리고 예결산특위를 상설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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