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3∼7일) 과정에서는 한중 관계의 구조적인 불안정성이 드러났다. 중국은 김 위원장의 방중 사실을 사전에 한국 정부에 알리지 않았고 한국 정부도 이 때문에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앞으로 한중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고 중국이 북한의 변화에 견인차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한 한국의 대중 외교는 어때야 할까.
동아일보와 한반도선진화재단(이사장 박세일)은 8일 오전 서울 중구 충무로 재단 사무실에서 ‘김정일 방중: 진단과 과제’를 주제로 긴급 좌담회를 열었다. 박 이사장은 “대중(對中) 정책의 목표는 한반도 통일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라며 “통일의 주체가 바로 우리라는 자기중심성을 가지고 전략적으로 임하자”고 말했다. 좌담회는 이용환 재단 정책위 상임부의장의 사회로 약 2시간 반 동안 열렸다. 다음은 참석자들의 제안(발표 순).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중국연구소장=중국이 국익 차원에서 무엇을 우려하고 있는지 아는 것이 대중 정책의 핵심이다. 중국은 포스트 김정일 체제가 지금처럼 중국이 관리할 수 있는 체제가 되지 못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북한의 안전보장도 중국의 국익과 관련돼 있다. 중국은 한국이 북한을 설득하라고 할 때는 중국을 찾다가 안보문제에서는 미국과의 동맹만 찾는 데 불만을 제기한다. 이런 중국의 우려와 불만을 불식해야 북한의 변화와 한반도 통일에 유리한 조건으로 중국을 설득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중국과 물밑대화를 나눌 수 있는 채널이 많이 마련돼야 한다. 정부 내에 중국전문가가 더 많이 있어야 한다.
▽류길재 북한대학원대 교수=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에서 느낀 우려는 발전하는 북-중 관계에 비해 남북관계는 경직돼 있다는 점이다. 이런 불균형이 계속되면 북한 급변사태 때 한국의 발언권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신(新)북방외교를 천명해야 한다. 통일외교는 북한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공조와 협력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통일과 남북관계 발전이 중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신상진 광운대 교수=북-중 관계의 특수성을 냉철하게 고려한 대중 외교정책이 필요하다. 한미동맹을 강조하면서 중국에 북-중 동맹 폐기를 요구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의 대북정책이 북한을 붕괴시키려 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피해야 한다. 최근 ‘북한=주적’ 개념을 되살려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북한과 중국은 동맹관계다. 북한을 주적으로 설정하는 것은 한국과 중국도 간접적인 적대관계로 간다는 인식을 중국에 심어줄 우려가 있다. 이런 정책 아래선 중국과의 안보협력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한미동맹 강화와 함께 중국과의 안보협력, 신뢰 강화에도 힘써야 한다.
▽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중국을 더 많이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중국은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관리하는 데 역점을 둔다. 좀 비약하면 한반도의 통일을 원치 않는다. 중국은 가까워지는 한미관계에 비판적이다. 북한과 중국이 특수관계인 것처럼 한미관계도 특수하다는 사실을 이해시켜야 한다. 중국은 늘 원칙을 강조하기 때문에 우리도 원칙을 가지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한미일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그런 배경을 가지고 대중 정책을 펴야 중국이 반응을 보인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한반도 통일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기 위한 대중 정책의 키워드는 양국의 상호 신뢰구축이 돼야 한다. 신뢰가 없으면 중국을 설득하려 해도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중국에 압력을 가하는 것을 보고 우리가 같은 입장과 위치에서 동등하게 행동하는 것은 중국에 ‘망둥이가 뛰니까 꼴뚜기도 뛴다’는 식으로 비칠 수 있다.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해 북한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자는 것도 중국은 북한을 위협하는 것으로 인식해 지지하지 않을 것 같다.
▽조영기 고려대 교수=단기적으로는 최근 이슈로 떠오른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중국과의 전략적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북한 핵문제를 중국이 주도적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중국 스스로에 손해라는 사실을 인식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초강대국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국제규범을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해야 한다. 불량국가인 북한을 감싸고 지원해 동북아시아의 지역적인 이익에 치중하는 것은 21세기의 중화(中華)를 추구하는 대국의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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