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고 동문, 17·18대 국회의원, 소속 정당의 강원도당위원장….’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맞붙은 한나라당 이계진 후보와 민주당 이광재 후보는 비슷한 정치적 궤적을 걸어왔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이계진 후보는 지역토착형 공약을 통해 실현 가능성에 무게를 둔 반면 이광재 후보는 교육과 노인복지를 앞세운 비전 제시에 역점을 둔 것으로 평가됐다. 동아일보와 매니페스토 평가단이 17일 두 후보가 제시한 주요 공약을 검증한 결과에서도 이 같은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계진 후보가 제시한 ‘지역 농축산물의 명품화 프로젝트’의 경우 실현 가능성에 무게를 둔 평가위원은 높은 점수를 줬으나 다른 평가위원은 유권자의 호응이나 비전 측면에서 참신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광재 후보가 내건 ‘경로당 운영비(난방비) 통합지원 확대’ 공약에 대해서도 “공약이 매우 구체적이어서 눈길을 끌었다”는 긍정 평가와 “예산의 우선순위를 고려할 때 가장 시급한 사업인지 의문”이라는 부정 평가가 교차했다.》
이계진 - 향토기업지원 조례 비전-실현 가능성 좋은 평가
이광재 - 연간 일자리 2만개 지역특성 감안한 계획 눈길
○ 이계진
한나라당 이 후보가 가장 먼저 내세운 공약은 ‘국립 강촌 산림휴양단지 조성사업’이다. 춘천시 남산면 강촌리 일원 3300ha의 국유림을 활용해 생태관광지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이 후보는 “한 해 관광객 200만 명이 1인당 1만5000원을 쓰면 연간 300억 원의 수입이 예상된다”며 “2000억 원을 투자했을 때 7년 안에 환수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하봉운 경기대 교직학과 교수는 “휴양단지라는 것이 전국적으로 건설되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른 휴양지에 2000억 원을 투자한다는 것은 너무 과한 느낌이다”고 말했다.
반면 채진원 한국정치학회 사무국장은 “강촌 산림휴양단지 조성사업은 관광산업 인프라를 조성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측면에서 좋은 공약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후보의 두 번째 공약은 ‘향토기업지원 조례 제정’이다. 이 후보는 “바이오와 의료기기 등 생명과 건강 분야 기업이 강원도 전체 고용과 매출 면에서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연관 산업이 없다 보니 지역자본이 대부분 외부로 유출되고 있다”고 조례 제정에 나선 배경을 설명했다.
이 공약은 평가 부문별로 5.8∼7.0점(만점 10점)의 고른 점수를 얻었다. 하지만 일부 평가위원들은 “아이디어의 참신성에 비해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안이 없어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 후보의 마지막 대표 공약은 ‘시군별 농축산물 명품화 프로젝트’다. 지역별 특산품 생산과 유통에 첨단 마케팅 기법을 도입해 매출 확대와 주민소득 증대, 일자리 창출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주영 상지대 법학부 교수(부동산전공)는 “이미 기초단체가 횡성한우 등 명품 브랜드를 만들어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는데 굳이 광역단체까지 나설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김기승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억지로 일자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현지 산업을 육성해 자연스럽게 일자리를 늘려 나간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고 평가했다.
○ 이광재
민주당 이 후보는 첫 번째 공약으로 ‘연간 일자리 2만 개 창출’을 내세웠다. 특히 △서울대 농생대 연구단지와 결합한 식품대기업 유치 △원주 의료기기 산업과 연계한 대기업 유치 △대기업 콜센터 유치를 통한 주부 일자리 창출 등 세부 실천방안을 구체적으로 담았다. 또 공원형 리조트와 생태공원 조성사업 등을 통해 강원도형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 공약은 실현 가능성에서 평점 5.7점을 받았으나 비전 측면에선 7.2점을 얻었다. 채진원 사무국장은 “구체적 목표를 제시한 측면은 좋으나 실현 가능성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주영 교수는 “강원도형 일자리를 만든다는 개념이 무척 신선했다”며 높이 평가했다.
이 후보가 두 번째로 내세운 공약은 ‘교육재정 3배 확충’이다. 현재 2000억 원 규모인 교육재정을 매년 단계적으로 확대해 도지사 임기가 끝나는 2014년에는 5000억 원까지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이에 대해 신준섭 건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강원도의 열악한 재정 여건을 고려할 때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모르겠다”면서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일자리와 교육 공약 등이 균형감을 유지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이 후보의 마지막 공약은 ‘경로당 운영비 통합지원 확대’다. 강원도 내 2741개 경로당에 겨울철에는 매달 100만 원, 평상시에는 50만 원씩 지원하겠다는 내용이다. 이에 필요한 예산 246억 원은 도비 50%, 시군비 50%로 충당하겠다고 했다.
김기승 교수는 “이 후보의 공약은 주로 어떻게 벌까보다는 어떻게 쓸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강원도의 재정 여건상 공약들을 다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반면 신준섭 교수는 “경로당 통합지원 확대는 계획이 아주 구체적이어서 두루뭉술한 일반적인 선거 공약과 차별화됐다”고 평가했다.
매니페스토 평가단은 두 후보의 공약이 전체적으로 참신성이 떨어진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주영 교수는 “원주시가 혁신·기업도시로 선정된 이후 강원도가 전체적으로 국가 프로젝트에서 소외된 느낌”이라며 “두 후보가 좀 더 적극적으로 사회간접자본(SOC)과 민간투자 유치를 위한 비전이나 로드맵을 제시해 주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 창과 방패
▒ 이광재의 대관령 생태공원 이계진 “끝난 사업 또 내놓나”
○ 이광재 측 반박 2006년 조사 수익률 9.1% 정권 바뀌면서 중단된 것
한나라당 이계진 후보와 민주당 이광재 후보 측은 상대가 내세운 주요 공약을 놓고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이계진 후보 측
이광재 후보가 내세운 대관령 생태공원 조성사업은 선거 때마다 내놓은 단골메뉴다. 대표적인 ‘공약(空約)’인 셈이다. 이광재 후보는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 강원도당위원장 자격으로 대관령 생태공원 조성사업을 약속했다.
이광재 후보는 18대 총선에 출마하면서도 같은 공약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더니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똑같은 공약을 내놨다. 이 사업을 추진하려 했던 한국관광공사에 확인해 보니 사업타당성 조사 결과 사업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려 사업을 종료했다고 밝혔다.
▽이광재 후보 측
대관령 생태공원 조성 사업은 대관령 삼양목장 인근 1000만 평 가운데 국공유지 880만 평에 대규모 공원을 조성하고 대관령과 강릉을 케이블카로 연결해 바다와 산을 하나의 관광명소로 만드는 사업이다. 약 6000억 원이 들 것으로 보인다.
2006년 한국관광공사가 작성한 타당성 보고서를 보면 수익률이 9.1%로 나와 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 뒤 관광공사의 개발 기능이 없어지면서 이 사업이 중단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만 정부의 관광진흥기금을 지원받고 민간 투자를 유치하면 다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 이계진의 특별자치도 추진 이광재 “부산-인천도 실패” ○ 이계진 측 반박 강원도 제몫 찾겠다는 것 정부도 특별경제권 분류
▽이광재 후보 측
이계진 후보는 ‘5+2’ 광역경제권에서 제주도와 강원도를 ‘2’에 해당하는 특별경제권으로 분류해 강원도를 특별자치도로 만들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17대 국회에서 부산이 특별법까지 냈다가 포기했고 인천이나 광주 등도 실패한 특별자치도를 과연 강원도가 실현할 수 있는가.
더욱이 제주특별자치도는 노무현 정부 시절 지방분권의 의지가 반영돼 만들어졌다. 하지만 현 정부에는 지방분권 논의도 미미하다. 정말 특별자치도를 실현하려 한다면 그 모형을 제시하고 도민들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이계진 후보 측
강원특별자치도는 전국 인구의 3%밖에 안 돼 홀대를 받고 있는 강원도의 목소리를 높여 제몫을 찾고, 제값을 받겠다는 것이다. 또 2014년을 목표로 한 행정구역 개편 때 인구는 적고 면적은 넓은 강원도가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
현 정부에서 제주도와 강원도를 특별경제권으로 분류했다. 강원도는 제주도처럼 적은 인구에 비해 면적이 넓고, 산업기반이 취약한 반면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제주도처럼 특별자치도를 추진할 명분이 충분하다. 부산이나 인천과는 상황이 다르다. 강원도가 그동안의 낙후성을 벗고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특별자치도에 도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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