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지키스탄서 온 38세 사피우린 씨 “2일이 정말 기다려집니다. 생애 처음으로 투표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월 귀화한 아스하트 사피우린 씨(38)는 1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교정에서 기자를 만나자마자 가방에서 100쪽가량 되는 선거 공보물을 꺼내들었다. 그는 20대 때부터 외국생활을 해 투표를 하는 것은 이번이 태어나서 처음이다. 사피우린 씨는 “의미 있는 투표가 되었으면 싶어 후보자 공약과 경력 등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며 서울시장 후보들의 공약을 정리한 메모지를 보여줬다.
그는 그동안 투표 한번 못해본 것이 늘 안타까웠다. 구소련 연방이었던 타지키스탄이 고향인 그는 선거라는 제도 자체가 낯설었다. 러시아인 아버지와 카자흐스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공산주의 체제에서 보냈다. 1991년 그가 막 대학에 입학했을 무렵 구소련 붕괴로 독립한 타지키스탄은 계속된 내전과 독재로 민주주의의 씨앗을 제대로 뿌리지 못했다. 이후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생활하다 1998년 한국 정부가 후원하는 한국어 장학생으로 선발돼 처음 서울 땅을 밟았다.
민주주의 국가들의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를 동경했던 그는 “기적 같은 경제성장을 이룩한 한국에서는 자유롭게 내 뜻을 펼칠 수 있겠다고 믿었다”며 입국 당시를 회상했다. 어릴 때부터 외교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사피우린 씨는 2003년 연세대 국제대학원에 입학했고 내년 2월이면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는다. 여동생 엘미라 사피우리나 씨(32)도 그의 권유로 2005년 한국에 와 3월 한국인과 결혼했다.
사피우린 씨는 “김치와 삼겹살 등 한국의 모든 것을 좋아하지만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좋다”며 밝게 웃었다. 12년 동안 한국에서 살아 한국어를 구사하는 데 큰 불편이 없지만 8표를 행사해야 하는 이번 선거는 너무 복잡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사피우린 씨는 “투표 1주일을 앞두고 100쪽 가까운 공보물이 와 읽어볼 시간도 부족했고 어느 후보가 어디에 출마했는지 구분도 안 돼 한참을 헤맸다”며 “분량은 많지만 내용이 피상적이어서 실제 후보들이 무슨 생각과 공약을 내세우는지 판단할 만한 정보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권자들도 후보의 외모나 말솜씨에 더 현혹되는 것 같고 정당의 정책보다는 지역과 혈연에 얽매이는 것 같아 아쉽다”고 덧붙였다.
앞으로도 꾸준히 투표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단호한 표정으로 “투표는 독재나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소중한 권리”라며 “민주시민이라면 책임의식을 갖고 투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윤석만 기자 sm@donga.com
“자신을 선택해달라고
맘껏 외치는 모습 신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당히 서려 한표 행사”
■ 北 출신 26세 김정아 씨
“내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뭔가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해요.”
지난달 6일 탈북자교육기관 하나원을 수료한 김정아 씨(가명·26·여)는 투표라는 말이 아직 생소하기만 하다. 김 씨는 “북한에 있을 때는 투표는 70대 할머니가 아침부터 잘 다린 저고리를 깔끔하게 차려입고 꼭 참여해야 하는 엄숙한 국가행사였다”고 말했다. 선거운동원들이 나와 흥겨운 노래를 부르고 요란하게 떠드는 남한의 선거는 낯설다. “저렇게 개인이 길거리에서 자신을 마음껏 선전하고 자기를 ‘선택’해 달라고 외치는 것을 처음 봐요. 그래도 자유국가 국민이 됐으니 선택하는 게 어떤 건지 배워보려고요.”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역 출신인 김 씨는 19세 때인 2005년 돈을 벌기 위해 홀로 탈북했다가 인신매매단에 걸려 중국 랴오닝(療寧) 성 농촌에서 노예처럼 4년을 지냈다. 발목이 묶여 매를 맞으며 북한의 가족들에게 연락도 하지 못하고 갇혀있던 순간에도 ‘내 삶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우연히 한국인 목사를 만나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연락을 하고 제3국(태국)을 통해 지난해 12월 남한 땅에 도착했다. 김 씨는 “또다시 새로운 세상에서 집도 생겼고 내년부터 대학도 다니게 됐다. 살기 좋다”며 웃었다.
당초 김 씨는 이번 선거에서 투표를 할까 말까 고민했다. 본격적인 남한생활 한 달 만에 맞는 선거라 포기하고 싶었다. 며칠 전 도착한 묵직한 선거홍보우편물을 뜯지도 않고 한 구석에 미뤄뒀다. 김 씨는 “남한사회나 정치에 대해 잘 모르는데 선택해야 할 게 너무 많아서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호기심에 이틀 전 우편물을 뜯어봤다. 다양한 후보들의 홍보물을 훑어보며 김 씨는 생각을 바꿨다. “교육정책을 집행하는 사람도 주민이 뽑고 정당도 뽑더라고요. 너무 신기했어요. 이걸 공부하며 남한을 배우는 계기로 삼자고 생각했죠.” 정책이나 공약이 피부에 와 닿지 않았지만 나름의 기준도 세웠다. 저소득층 복지정책에 주력한 후보를 뽑자는 것. “북한, 중국, 남한을 거치며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그분들을 돕기 위해 한 표의 힘이나마 보태고 싶어요.”
2일 김 씨는 다른 탈북자 지인들과 함께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투표소를 찾을 예정이다. 기자가 투표 방법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자 김 씨는 “오늘 밤새 공부 좀 단단히 해야겠다”며 혀를 내밀었다. “그래도 내가 대한민국 사람으로 당당히 서려면 그만한 고생은 당연하겠죠?”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