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말리는 접전 끝에 재선에 성공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3일 오전 8시 반 당선이 확정된 직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선거사무소에 모습을 나타냈다. 전날 저녁부터 개표 상황을 지켜본 탓인지 지친 표정이었다.
오 시장은 기자회견에서 “상처뿐인 승리였다. 장수를 모두 잃은 대표 장수가 된 듯한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4시 반이 돼서야 간신히 역전에 성공해 2만6000여 표(0.6%포인트) 차로 신승했지만 상처는 깊었다는 얘기다. 그는 당선 확정 후 곧바로 서울시청으로 출근해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하면서 업무에 복귀했다.
오 시장은 당초 낙승이 예상됐다. ‘오세훈 바람’으로 한나라당 소속 구청장 후보의 상당수가 당선될 것이라는 희망 섞인 관측까지 있었다. 투표 전날까지만 해도 오 시장 측 캠프에서는 “당선 후 시정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한나라당 열세 지역 지원에 주력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2일 오후 6시 투표 종료와 함께 발표된 방송 3사의 출구조사 결과가 47.4%(오세훈) 대 47.2%(한명숙)로 나타난 이후 피 말리는 개표 상황이 전개됐다. 개표 초반에 오 후보는 한 후보를 10.6%포인트 차로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오후 9시부터 한 후보의 추격전이 두드러졌다. 급기야 오후 10시 20분 개표율이 4.0%인 상황에서 한 후보가 2.7%포인트 차로 오 후보를 앞서기 시작했다. 이 같은 한 후보의 우위는 5시간 넘게 이어졌다. 한 후보의 승리가 굳어지는 듯하자 양 캠프의 희비는 엇갈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3일 오전 4시 반경 소수점 이하의 근소한 차로 오 후보가 역전하면서 대반전의 길이 열렸다. 한나라당이 강세인 서초구에서 개표기 고장으로 중단됐던 개표가 재개된 후 서초 강남 송파구 등 강남권에서 오 후보 표가 무더기로 쏟아졌다. 승기가 굳어지자 오 후보는 오전 5시경 선거사무소에 다시 나왔다.
오 시장은 가까스로 살아났지만 25개 구청장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4석을 얻는 데 그쳤다. 시의원의 75%를 민주당이 장악했다. 당선 후 오 시장 캠프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가 걱정이다. 발톱을 세우고 있는 야당 구청장과 시의원을 설득해 공약했던 정책들을 얼마나 지켜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오 시장은 기자회견에서 “사실상의 패배라고 생각한다. 겸허한 마음으로 시정을 이끌겠다”며 “저를 지지하지 않은 많은 분들의 뜻도 깊게 헤아려 균형 잡힌 시정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몸을 낮췄다.
오 시장은 수도권에서 불어닥친 ‘정권 견제론’의 돌풍 속에서도 역전극을 펼치며 생환했다. 오 시장이 아니었으면 과연 견제론 ‘쓰나미’를 버텨낼 수 있었겠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이번 선거과정에서 확인된 그의 대중적 경쟁력은 오 시장이 자신의 입지를 다져나갈 수 있는 든든한 정치적 밑거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첫 ‘재선 서울시장’이라는 타이틀도 큰 정치적 자산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장으로 일하며 쌓아온 시정 경험은 그만의 차별화된 무기가 된다. 이 때문에 여권 내부에선 오 시장이 차기 지도자급에 올라서는 결정적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오 시장의 향후 행보가 더욱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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