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선택’ 그 후]MB “성찰 기회로”… 민심의 파도에 국정 브레이크 걸리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4일 03시 00분


[세종시 수정안] 추진력 상실… 靑“국민 뜻 확인”
[4대강 사업] 강행 부담 속 “공사 늦출순 없어”
[대북정책]“여론 존중하되 제재원칙은 유지”
[개헌논의] 친박동참땐 국정 돌파구 될수도

《6·2지방선거가 여당의 참패로 끝남에 따라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 중인 주요 국정과제와 정치 일정에 일정 부분 브레이크가 걸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이 3일 정정길 대통령실장의 사의를 보고받은 뒤 “선거 결과를 성찰의 기회로 삼자”고 한데서도 이 대통령의 국정 드라이브에 있어 변화의 조짐을 읽게 해준다.》

○ 세종시 수정안

한나라당은 대전과 충남, 충북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전패했다. 특히 세종시가 들어설 공주·연기에서 한나라당 박해춘 충남지사 후보가 얻은 득표율은 11%대에 그쳤다.

여권에선 그렇지 않아도 버거운 과제였던 세종시 문제를 이 기회에 털고 가자는 말이 나온다. 한 친이(친이명박)계 의원은 “당 지도부가 사퇴한 마당에 세종시 당론 결정을 조율할 주체마저 없다. 전당대회나 7·28 재·보궐선거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면 빨리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다”고 말했다.

여권은 선거 전만 해도 충북에서 수성을 하면 여세를 몰아 6월 임시국회에서 세종시 수정안을 마무리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분석을 해왔다. 하지만 세종시 문제가 핵심 쟁점이 된 충청권 선거에서 패배해 수정안을 밀어붙일 동력을 상실한 데다 친박(친박근혜)계의 반대도 여전하다. 따라서 세종시 논의가 사실상 고사(枯死)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청와대도 맥이 빠진 분위기다. 한 참모는 “그동안 국민투표론 등이 거론됐지만 이번 선거로 세종시에 대한 국민의 뜻을 확인했다”며 “정부 차원의 견해 표명이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또 “세종시 문제는 정운찬 국무총리의 거취와도 관련이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 4대강 살리기 사업

정치권에선 ‘4대강 살리기’를 둘러싼 야당과 종교계, 환경단체의 반발이 이번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4대강 사업=밀어붙이기’라는 프레임이 ‘MB(이 대통령의 영문 이니셜) 견제론’으로 현실화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4대강 사업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핵심 과제라며 수정 논의 자체를 금기시하는 분위기다. 청와대 당국자는 “선거에 졌다고 해서 공사가 한창인 사업을 변경하거나 늦출 수는 없다. 이는 확고한 방침이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지방권력의 지형이 바뀐 만큼 사업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의 다른 참모는 “사업장마다 강에서 퍼 올린 모래 등을 쌓아놓는 골재적치장이 필요한데 적치장 인허가권이 지자체에 있다”며 “공사장 과적차량 단속 문제, 문화재 관련 일부 사안도 지자체장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예정대로 4대강 사업을 추진하되 선거를 계기로 대국민 설득이 부족했다는 게 여실히 드러난 만큼 홍보에 더 중점을 두겠다는 방침이다. 또 종교계 등과도 접점을 늘리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 천안함 후속 조치 등 대북정책

이번 선거에 영향을 미친 요인 중 하나로 남북긴장의 고조로 인한 안보불안감을 건드린 ‘전쟁 대 평화론’이 꼽히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기존 대북정책 기조를 바꿔야 하거나 바꿀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지난해 이후 한국과 미국 양국의 대북정책은 제재와 봉쇄라는 점에서 동조화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북한의 2차 핵실험이 촉발시킨 제재국면은 올해 천안함 폭침사건으로 강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는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와 공조해 북한의 관행을 고치고 비핵화와 개혁·개방을 이끈다는 큰 틀의 대북정책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는 천안함 폭침 이후 국민들 사이에 확산된 실제적인 안보 불안을 해소함과 동시에 북한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진보 진영 지자체장들과 대북정책의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이광재 강원지사와 안희정 충남지사, 송영길 인천시장 등 과거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깊이 간여하거나 이를 적극 지지했던 새 광역단체장들이 북한과의 개별적인 소통을 통해 정부의 대북정책과 다른 움직임을 나타낼 가능성도 크다.

○ 개헌 논의 및 기타 개혁과제

청와대와 여권에서는 올해 하반기에는 권력구조 개편을 뼈대로 하는 개헌 논의를 본격화하려 했다. 그러나 선거 책임론, 인적 쇄신 논란 등이 벌어지게 되면 개헌을 끌고 갈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나온다.

다만 친이계 주류 측은 친박계와 야당 사이에서 최대공약수를 찾으면 오히려 동력을 받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한 친이계 당직자는 “지방선거 이전부터 여권에서 박 전 대표 측을 개헌에 동참시킬 수 있는 깜짝카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대통령이 개헌 논의를 촉발시킴으로써 국정 장악력을 다시 틀어쥐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교육·토착·권력형 비리 등 3대 비리 척결과 검경개혁을 포함한 사법개혁도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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