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1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인적 쇄신을 촉구하면서 “정운찬 국무총리가 대통령을 독대해 청와대 참모진의 인적 쇄신을 건의하려 했지만 참모진이 독대를 막았다고 한다. 인적 쇄신이 왜 필요한지 자명해졌다”고 주장했다.
박 원내대표가 그처럼 말한 근거는 일부 언론의 보도였다. 그러나 청와대와 총리실은 보도가 나온 10일 오전 관련 내용을 강하게 부인했다.
청와대와 총리실,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 총리는 9일 오전 11시경 주례보고차 청와대에서 이 대통령을 만났다. 정 총리는 나로호 발사 상황 등을 보고했다. 관례대로 정정길 대통령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이 배석했다. 이어 정 총리는 이 대통령 및 배석자들과 오찬을 함께한 뒤 오후 1시 30분경 청와대를 떠났다. 이 대통령과의 독대는 없었다.
이를 놓고 일부 언론은 정 총리가 이 대통령에게 청와대 참모진의 인적 쇄신 이후 개각을 단행할 것을 요구하려 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보도는 정 총리와 가까운 사이이며 대통령직속 기구에 근무하는 한 인사가 이날 낮 일부 기자와 점심식사를 하면서 “총리가 대통령과 독대해 국정쇄신안을 건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데 근거를 둔 것이었다. 한나라당 내 일부 소장파 의원과 총리실 관계자도 기자들에게 비슷한 얘기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 총리가 이 대통령과의 독대 없이 청와대를 떠나자 이들은 ‘인적 개편의 대상인 청와대 수석들이 의도적으로 대통령을 빼돌렸다’고 주장했다. 반면 배석자들은 이날 오찬에서 이 대통령이 식사를 마친 뒤 나로호 관련 회의 일정 때문에 먼저 자리를 떴고 이어 정 총리도 다른 참석자들에 앞서 자리를 떠났다며 대통령을 빼돌렸다는 얘기는 억측이라고 해명했다. 한 수석비서관은 “독대를 하려 했다면 회의나 오찬에서 정 총리가 대통령에게 ‘따로 할 얘기가 있다’고 말하면 된다. 그러면 배석자들이 자리를 비켜준다”며 “이날은 그런 발언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 총리는 실제로 이 대통령에게 쇄신안을 전달하려 했을까.
정 총리의 한 지인은 “총리가 청와대 인적 쇄신 및 정부 내 의사소통 체계의 개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총리는 세종시와 관련해서도 ‘이 대통령과 나만 애쓰고 있고 청와대 참모들은 손을 놓고 있는 것 같다’며 대통령 주변 인사들에 대한 불만을 수차례 털어놨다”고 전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정 총리가 지인들 및 정부 여당 내 일부 인사로부터 참모진 개편을 포함한 국정 쇄신의 필요성을 건의받았고, 이를 공감하는 반응을 보였다”고도 했다. 정 총리가 지방선거 이튿날인 3일 이 대통령을 만나 사의를 표명한 것처럼 본인의 거취에 연연하기보다는 이번에 청와대 쇄신을 건의함으로써 국정의 물줄기를 바꿈과 동시에 그동안 총리 직분 수행을 하면서 맞닥뜨렸던 보이지 않는 장벽을 넘어서겠다는 생각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 총리가 국정 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직접 총대를 메고 이를 구체화할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정 총리의 한 핵심 측근은 “현 상태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인사권을 거론하면서까지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정당화될 만큼 청와대와 총리실 간의 소통이 단절된 상황은 아니다. 이 대통령과 정 총리 간에는 이심전심으로 오가는 공감과 나름의 커뮤니케이션이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주례보고 상황 자체보다는 특정 세력이 정 총리의 ‘미래 발언’까지 사전에 언론에 흘리면서 청와대 참모진 교체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여권 내 친이(친이명박)계 소장파가 지방선거 패배를 계기로 정 총리를 앞세워 이 대통령 주변의 일부 참모를 축출하고 주류 세력의 교체를 추진 중이라는 것이다.
특히 친이계 소장파는 이 대통령이 참모진 개편을 7·28 재·보선 이후로 미룰 것이라는 청와대의 전언에 반발하고 있다. 청와대를 둘러싼 권력이 외부 변화를 수용하지 않은 채 개인의 자리 보전에 이용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장파가 이번에 ‘어설픈 언론 플레이’를 펼친 데서도 알 수 있듯 실제로 권력 지형의 변화를 가져오기에는 전략과 세력에서 역량의 부족을 노정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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