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400쪽 보고서’ 실체는?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12일 03시 00분


민주 “클린턴이 봤다던 자료 내놔라” 공세
정부 “만든 적 없어”… 미군측 보고서인듯

“정부가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에게는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400쪽짜리 보고서를 줘놓고 민주당에는 (5월 20일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 발표 1시간 전에 고작 7쪽짜리 보도자료만 줬다. 그래놓고 국민과 야당에 합조단 발표를 무조건 믿으라고 한다.”

민주당이 6·2지방선거 기간에 합조단 발표를 신뢰할 수 없는 근거로 줄기차게 제기해 온 주장이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10일 국회 연설에서도 이를 되풀이하며 정부를 비판했다.

민주당이 그런 주장을 펴는 근거는 지난달 26일 클린턴 장관의 발언이다. 클린턴 장관은 한미 외교장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천안함) 보고서는 400쪽짜리로 굉장히 철저하고 전문적인 보고서였다. 우리는 중국에 그 보고서를 검토하길 촉구했다. 한국 측도 똑같은 제안을 중국 측에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도대체 그 400쪽짜리 보고서는 어떤 것이며, 왜 정부는 야당에 주지 않는 걸까.

동아일보의 확인 요청에 국방부와 외교통상부는 11일 “확인해 본 결과 우리 정부는 400쪽 분량의 보고서를 만든 적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도 이날 국회 천안함 특위에 출석해 “400쪽 규모로 보고서를 만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군은 클린턴 장관이 봤다는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아니라 미국 군 당국에서 받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군 당국에 따르면 미 해군은 합조단에 참여해 한국과 모든 자료를 공유했고, 그 결과를 본국에 수차례에 걸쳐 보고했다. 군 관계자는 “미 국방부가 파악한 조사결과를 집대성해 국무부에 제공했을 것이고 클린턴 장관은 이 보고서를 본 뒤 언급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군 관계자는 “야당 의원들의 요구에 충실히 답변 자료를 제출해 왔고, 비밀사항은 대면보고로 설명했다”며 “군사위성 첩보 등을 제외하면 한국 야당이 모르는 내용은 없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클린턴 장관 발언 이후 야당이 계속 이 문제를 제기해 왔는데도 11일 동아일보의 확인 요청 이전에는 군과 외교부의 누구도 ‘400쪽짜리 보고서’의 실체를 파악해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점은 정부의 해이한 태도를 보여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보고서가 존재하지 않으면 진작 그렇게 야당에 설명해 오해를 풀었어야 했는데도 사실상 남의 일인 양 논란을 수수방관해 왔기 때문이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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