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군함이 필리핀 해군에 처음 수출된다. 미국과의 관계가 긴밀한 필리핀 정부가 미국산이 아닌 한국산 군함을 구입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수출은 필리핀 측이 한국 방위산업의 기술 및 가격경쟁력을 인정한 것이란 점에서 향후 대(對)필리핀 군수품 수출의 첫 단추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필리핀 정부는 앞으로 10억 달러(약 1조2500억 원)를 투자해 ‘군수 현대화사업’을 추진할 계획이어서 시장 전망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우인터내셔널은 13일 “이달 말 필리핀 정부와 최종 계약을 맺고 한국산 다목적용 군함(MRV·Multi Role Vessel)을 수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계약은 대우인터내셔널과 우리 정부의 합작품으로 수출 성사를 위해 한국 정부는 ‘한-필리핀 방산·군수 공동위원회’ 등을 통해 필리핀 정부와 긴밀히 교류해 왔다.
필리핀에 수출될 군함은 길이 120m, 3000t급 규모의 MRV다. 한 척의 가격은 약 1억1000만 달러 선. 군함 안에 장갑차와 무기 등 군수품을 실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병원, 숙박시설 등도 조성할 예정이다. 필리핀 군대의 효과적인 대민지원 업무를 돕기 위해서다.
박석용 대우인터내셔널 마닐라지사장은 “필리핀은 7000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나라이기 때문에 국방뿐만 아니라 대민지원 영역에서도 군함의 활용도가 매우 높다”며 “현지 군인들의 역량이 최대화될 수 있도록 필리핀 해군의 요구에 맞춰 맞춤형 군함을 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번 구매는 인도네시아 해군을 방문했던 필리핀 해군 관계자가 현지에 수출된 한국산 군함을 보고 반해 구입 의사를 타진해 오면서 시작됐다. 대우인터내셔널이 인도네시아에 수출한 이 군함 역시 병원 등을 접목한 MRV였다.
박 지사장은 “이 같은 맞춤형 제작은 한국이 세계 1위의 조선산업과 세계 7대 군수산업 국가라는 바탕이 있어 가능한 것”이라며 “필리핀 측에도 ‘한국은 최고의 군함을 가장 싸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나라’라는 점을 적극 강조했다”고 전했다. 실제 비슷한 사양의 군함을 미국이나 독일에서 수입하려면 2배 이상의 값을 치러야 한다.
한편 우리나라와 비슷한 가격경쟁력을 갖춘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은 이번 수주의 최고 경쟁자였다. 이에 대우인터내셔널은 ‘금융지원’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예산이 넉넉지 않은 필리핀 해군이 연불(할부)로 구입 대금을 납부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박 지사장은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근 필리핀 육군과 공군 측에서도 한국산 군수품을 구입하고 싶다는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밝혔다.
대우인터내셔널은 말레이시아 합참이 추진하는 12억 달러 규모의 다목적함(MRSS·Multi Role Support Ship) 사업도 수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세철 대우인터내셔널 쿠알라룸푸르 지사장은 “대우인터내셔널은 1993∼1996년 말레이시아 육군에 장갑차 111대를 공급한 경험이 있다”며 “그사이 한국이 세계 7대 군수강국으로 발전한 만큼 수주 가능성을 밝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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