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안이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해 법 공백 상태가 우려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대가 2008년 6월 29일 0시를 넘긴 한밤중 서울 중구 태평로에서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게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돌 등을 던지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안이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함에 따라 결국 우려했던 ‘법 공백’ 상태가 현실화됐다.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10조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7월 1일부터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국회 일정을 감안할 때 9월 정기국회가 시작되더라도 집시법 개정안 재논의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3개월 이상은 야간집회에 대한 당국의 규제수단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경찰은 29일 불법·폭력 시위에 대해서는 끝까지 추적해 사법 처리키로 하는 등 구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했다.
○폭력 시위 가능성 높아
야간집회가 전면 허용되는 사태를 맞아 사회 각계에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2일 현재 접수된 7월 1일 이후 야간 집회신고 건수는 서울 1117건 등 전국적으로 3442건에 달한다.
경찰은 야간집회의 특성상 불법·폭력시위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경찰청이 1998∼2009년에 열린 집회·시위 13만9967건을 분석한 결과 주간집회가 폭력시위로 변질된 경우는 0.46%인 데 비해 야간집회는 6.21%로 13배 많았다.
야간집회에 따른 시민들의 불편도 예상된다. 당장 퇴근시간대에 대규모 집회가 열릴 경우 주변 직장인들이 교통 체증에 발이 묶일 수 있다. 명동 주변 상인들로 구성된 ‘명동관광특구협의회’ 이동희 사무국장은 “야간에 집회가 열리게 되면 외국인들이 위협을 느껴 거리로 나오기보다는 숙소에 머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매출에 상당한 지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의 업무 부담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경찰에 따르면 야간집회에 동원되는 경찰력은 건당 평균 7.33개 중대(1중대는 80명)로 주간의 2.38개 중대보다 3배 많다. 경찰청 이중구 경비과장은 “야간집회에 대비해 최소한 30% 정도의 인력을 늘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정희경 정책실장은 “집회 및 시위의 자유도 존중해야 하지만 시민들의 큰 불편이 예상되는 만큼 국회는 하루속히 법 개정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박경신 소장은 “타당한 근거 없이 무조건 야간집회가 불법·폭력집회로 변질된다는 걸 전제로 이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은 헌법이 보장한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무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 대응책 마련
경찰은 29일 오후 전국 지방경찰청 정보·경비·수사 담당 계장 연석회의를 긴급 소집해 야간집회 관리 대책을 논의한 결과 안전을 우선으로 하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엄정 대응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경찰은 야간집회가 허용되더라도 야간시위는 여전히 금지하고 있는 만큼 판례상 명백한 ‘시위’에 해당하는 행진, 도로점거, 삼보일배, 고공농성 등은 현행과 같이 계속 금지키로 했다. 이를 위해 야간집회 신고 접수 시 구체적인 집회 방법을 명시하고 시간·장소도 구체적으로 적시하도록 했다. 그 대신 허용된 야간집회에 대해선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 현장에 조명차 등 안전장비를 최대한 배치하고 주최 측에도 질서유지인을 낮보다 많이 지정하도록 지도하기로 했다.
불법·폭력시위가 발생할 경우엔 엄정 대처할 방침이다. 인근 주민이나 상인의 피해신고가 예상되는 만큼 집시법상 소음기준을 엄격히 적용하고, 야간집회 현장에서 폴리스라인을 넘어 행진을 시도하거나 도로를 점거하는 등 신고범위를 일탈할 경우 즉시 해산에 나설 방침이다. 또 경찰관을 폭행하고 경찰장비를 탈취하는 등 불법폭력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현장 검거키로 했다.
아울러 채증을 철저히 해 사후라도 불법행위는 끝까지 추적해 사법조치할 계획이다. 인적·물적 피해 발생 시 손해배상 청구·가압류 등 민사상 책임도 묻기로 했다. 경찰은 이를 위해 경찰관 기동대를 야간집회 현장에 우선 배치하고 5년에 걸쳐 565억 원을 들여 야광물감액과 야광조끼, 야광봉 등 야간집회 관리장비도 보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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