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금성’ 박씨에 도자기 사진 건네 진품 여부 국내 감정 의뢰
박씨, 전향 무장간첩 이광수에 “아들소식 알아보겠다”며 접근
북한 당국이 문화재로 추정되는 골동품을 팔아 간첩의 공작활동 자금을 마련하도록 지시한 정황이 검찰에 포착됐다. 북한이 다량의 문화재를 해외로 밀반출해 외화벌이에 나선다는 첩보는 많았지만, 실제로 간첩을 통해 문화재 판매를 위한 감정에 나선 사실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21일 서울중앙지검에 따르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채서 씨(56·암호명 흑금성)는 지난해 1월 자신을 포섭한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총국 공작원 이모 씨에게서 북한산 도자기의 사진 파일을 e메일로 넘겨받은 뒤 중국과 한국의 골동품 거래상들에게 이 도자기의 진품 여부를 감정해 달라고 의뢰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도자기는 복숭아 모양의 연적(벼루에 먹을 갈 때 쓸 물을 담아두는 그릇)으로 조선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됐지만 감정 결과 진품이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는 이 씨가 이 도자기를 판매해 공작활동자금을 마련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시를 수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공안당국은 북한의 일부 관료들이 가짜 문화재를 유통시키다 처벌된 사례도 있는 만큼 이 씨가 독단적으로 이 도자기를 판매하려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검찰 조사결과 박 씨는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 때 유일하게 생포된 이광수 씨에게 “아들 소식을 알아봐 주겠다”며 접근해 그의 집과 근무지도 다녀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박 씨는 자신에게 군사기밀을 유출한 김모 육군 소장의 소개로 2008년 2월 이 씨를 처음 만난 뒤 다음 달 서울에 온 이 씨와 함께 자동차로 4시간이 넘게 걸리는 그의 집을 방문했다.
박 씨는 휴대전화 카메라로 이 씨와 사진을 찍고 근무지 전경도 찍은 뒤 이를 중국에 있는 공작원을 만나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북한이 무장간첩 출신으로 재포섭된 한모 씨(63·구속)처럼 “가족과 만나게 해 주겠다”며 이 씨를 재포섭하려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1995년부터 옛 국가안전기획부 대북공작원 ‘흑금성’으로 활동하던 박 씨는 1998년 ‘북풍사건’으로 해고된 뒤 북측에 포섭돼 군사기밀을 넘겨준 혐의(국가보안법상 목적수행 등)로 20일 구속 기소됐다. 박 씨는 김 소장에게서 2급 군사기밀인 ‘작계 5027-04’의 일부 내용을 전해 듣고, 2003년 9월부터 2005년 7월까지 김 소장에게서 입수한 ‘군단작전’ ‘지휘관 및 참모업무’ ‘사단통신운용’ 등 9권의 군사교범을 북한에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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