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각설 두달… 일손놓은 정부]뒤숭숭한 부처 표정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7월 28일 03시 00분


“장관 바뀌면 모두 바뀔텐데”… 결재서류가 안올라온다

“휴가나 다녀와서 개각이 어떻게 되나 지켜보고 부동산 실태 점검을 하자는 분위기다.”

27일 국토해양부의 한 직원은 개각을 앞둔 국토부 분위기를 이같이 전했다. 집값 하락과 아파트 거래 활성화가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지만 장관이 바뀔지도 모르는 시점에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무총리실 관계자도 “수장이 흔들리면 아랫사람들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고 토로했다.

이는 개각 때마다 공직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문제는 이런 상태가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국무총리를 포함한 대대적인 개각이 단행될 것이라는 얘기가 계속 흘러나오면서 일부 부처의 민감한 정책업무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이런 ‘행정공백’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 흔들리는 수장…업무조율 난항

정운찬 국무총리는 교체설이 나온 뒤에도 연일 대기업-중소기업의 상생을 강조하며 현장을 방문하는 등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내심 본인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한다.

총리실 관계자는 “이런 시점에 너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모양새가 안 좋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것 아니냐”며 “꼭 필요한 공식 행사는 참여하되 가능한 한 일정을 많이 만들려 하지 않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총리의 입지가 불안정하다 보니 총리실이 주요 현안과 관련한 부처 간의 이견을 조율하려 해도 ‘영(令)이 서지 않는’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농림수산식품부 직원들은 “장관을 유임하든 교체하든 하루빨리 결정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은다. 한-캐나다 쇠고기 수입 협상,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등 주요 현안은 농식품부가 독자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청와대 및 정치권과 연계해 풀어가야 하기 때문에 장관의 거취가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효율적으로 정책을 조율해 나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국토해양부 산하기관 및 관계 기관은 국토부 개각에 촉각을 세우면서 업무협조를 미룬 채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교육과학기술부도 안병만 장관의 유임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시도 교육청과의 정책 협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일부 교육감이 ‘장관의 교체 여부가 결정된 뒤에 하자’며 교과부와의 협의에 소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 움직이지 않는 공직사회

정 총리는 13일 국무회의에서 “모든 국무위원은 마지막 날,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가져달라”고 당부하는 등 여러 차례 공직기강 확립을 강조했다. 하지만 일선 공무원들의 생각은 다르다. 농식품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위에서는 흔들림 없이 일하라고 하지만 솔직히 아랫사람들 처지에서는 눈치를 보게 된다”며 “장관이 바뀌면 중점 정책도 바뀔 수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개각이 빨리 이뤄지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통일부는 현인택 장관의 거취와 남북관계 냉각이 맞물려 있다. 3월 26일 천안함 폭침사건 이후 남북관계를 관리하고 대응조치를 마련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지만 5·24 대북조치 발표로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관계가 단절되고 개각마저 늦어지자 활동이 크게 줄어든 상태다. 통일부 관계자는 “7월 한 달 동안 바쁘게 돌아간 사업은 6·25전쟁 60주년 행사인 ‘평화통일대행진’ 준비밖에 없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달 초 노동부에서 명칭이 바뀐 고용노동부는 업무의 중심을 노사관계에서 고용으로 바꾸는 작업을 해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임태희 전 장관이 대통령실장으로 옮겨간 뒤 장관이 공석이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새로 올 장관이 운영 방향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정책이 크게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 고용 중심으로 업무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부서 신설 및 통폐합이 필수적이지만 지난주 발표한 조직개편은 다른 부처의 기능을 가져오거나 내부 조직을 개편하는 대신 인사 및 감사 제도를 수정하는 선에서 그쳤다.

보건복지부도 장관이 바뀌면 주요 정책을 원점에서 다시 추진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사회서비스, 녹색성장 프로그램 등 주요 정책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부터 7·28 재·보궐선거 직전까지 아무것도 착수하지 못해 사업추진 동력이 확실히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기획재정부 등 다른 부처와의 협조가 필요한 사업에서는 ‘긁어 부스럼 내지 말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복지부의 한 간부는 “장관이 누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산모도우미 사업 등 예산 증원을 승인받아야 하는 사업을 추진하다가 잘못되면 실무자가 문책을 받을 수 있다”며 “지금으로선 가만히 엎드려 있는 것이 상책”이라고 귀띔했다. 또 직장의료보험조합 노조와 임금·단체협상이 진행 중인 건강보험관리공단은 복지부 장관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라 협상 타결 시점을 개각 이후로 미루고 있다는 후문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미 휴가철인 데다 다음 달 중순에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연습이 실시되고 9월부터는 정기국회가 열리므로 하반기에 정부가 일을 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며 “조속히 개각을 단행해 공직사회를 안정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편집국 종합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