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 재·보궐선거에서 승리한 한나라당이 더욱더 자세를 낮추고 있다. 친(親)서민 행보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6·2지방선거와 재·보선을 통해 드러난 ‘시계추 민심’을 보고 잠시라도 승리의 오만에 빠져들면 언제든지 민심이 떠날 수 있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선거 이틀 만인 30일 한나라당이 매머드급 서민정책특위를 출범시킨 것도 더는 ‘작은 승리’에 도취해선 안 된다는 각성 때문이다.
○ 모든 정책은 ‘서민’으로 통한다
당 서민정책특위(위원장 홍준표 최고위원)는 이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당사에서 첫 회의를 열어 향후 특위 운영과 10개 분야별 핵심 정책과제를 논의했다. 서민정책특위는 다음 달 6일까지 소위원회 위원 인선을 마무리하고 매주 금요일 특위 전체회의를 열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서 가장 강조된 단어는 ‘현장’이었다. 지금까지 여러 특위를 구성해 많은 서민정책을 내놓았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는 자기반성에서 출발한 것이다. 분과별 위원을 대학교수나 전문가가 아닌 현장의 서민대표로 인선키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홍 최고위원은 “서민정책특위는 한나라당이 ‘부자정당’에서 ‘서민정당’으로 바뀐다는 강력한 시그널(신호)을 국민들에게 보내는 것”이라며 “앞으로 정쟁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오로지 서민정책만을 거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첫 회의부터 다양한 주장이 쏟아졌다. 문창준 택시대책소위원장은 최근 택시운전사가 차 안에서 흡연하면 120만 원의 과징금을 물도록 한 서울시 결정을 비판하며 “그런 인식이 한나라당의 표를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택시운전사 출신인 문 소위원장은 진보신당 당원으로 알려진 영화배우 문소리 씨의 아버지다.
서민의료대책소위원장인 주광덕 의원은 “보건의료 공약은 민주당 안이 국민의 공감을 더 얻는 것 같다”며 “선제적인 서민의료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민자녀등록금대책소위원장인 김성식 의원은 “4대강 사업을 축소, 보완하는 플랜B(새로운 대안)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홍 최고위원이 “민주당의 주장 같다”고 제지하자 김 의원은 “4대강 축소 없이 정책의 신뢰성을 회복할 수 없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 ‘로키(low key·낮은 자세)’는 계속된다
‘돌아온 2인자’ 이재오 당선자의 서울 은평구 불광동 지역사무실에는 화환이나 축하 난을 보내겠다는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 당선자는 축전을 제외하고 모두 사양하고 있다. 그럼에도 보내온 화환이나 난은 그대로 돌려보낸다고 이 당선자 측은 전했다. 사무실에 있는 유일한 축하 난은 이명박 대통령이 보낸 것이다.
이 당선자 측은 “지역주민들에게 혹여 ‘세 과시’라는 말을 들을까 봐 선거운동도 혼자서 했는데 당선된 뒤 화환과 축하 난이 즐비하면 주민들이 곧바로 실망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 대신 이 당선자는 전날에 이어 30일에도 지역을 구석구석 돌며 당선 인사를 계속했다. 당내 현안이나 정치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당 지도부도 달라진 모습이다. 전당대회 직후 현안을 놓고 공개적으로 충돌하기도 했으나 재·보선 승리 이후로 그런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안상수 대표와 홍 최고위원 등 지도부는 당의 불협화음이 나지 않도록 최대한 자제하는 분위기다. 특히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 간 계파갈등이나 친이 내부의 ‘권력투쟁’이 불거지면 당 분열의 책임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한나라당의 한 재선 의원은 “당 지도부끼리도 마음이 맞지 않는 부분이 많은 것 같은데 공식 회의석상에서는 물론이고 비공식 자리에서도 최대한 말조심을 하는 모습”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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