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인사청문회]盧차명계좌 70차례 추궁에 24차례 “송구” 되풀이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24일 03시 00분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 가이드라인 준비한듯 ‘모르쇠’ 답변 일관

2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가 인사말을 마친 뒤 의원들을 향해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2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가 인사말을 마친 뒤 의원들을 향해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가 2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섰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존재’ 발언의 근거를 명확히 밝히지 않아 결국 차명계좌 논란은 검찰 수사에서 진실이 가려지게 됐다.

조 후보자는 3월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단 간부 4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내부특강에서 “노 전 대통령이 사망하기 전 차명계좌가 발견됐다”는 내용의 강연을 했다. 이 사실이 13일 언론에 보도되자 “주간지인지 인터넷 언론기사인지를 보고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 이후 언론의 취재가 계속되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인사청문회에서 밝히겠다”며 언급을 피해왔다.

그러나 조 후보자는 정작 23일 청문회에서 발언의 근거를 명확히 밝히지 않는 등 이전의 해명보다도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조 후보자는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이 ‘주간지와 인터넷을 보고 (노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을) 했다는 것은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라는 질문에 “그런 내용이 인터넷 등에도 게재되지 않았냐는 취지로 한 말”이라고 답했다. 차명계좌 발언의 소스가 주간지나 인터넷에 의한 것이라고 대답할 경우 여당의 ‘특검 도입’ 요구가 궁색해질 것을 감안해 ‘소스가 주간지나 인터넷’이 아니라 ‘주간지나 인터넷에도 그런 얘기가 있었다’고 말한 것으로 부연 설명한 것이다.

조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입을 다문 데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주간지나 인터넷에서 본 것 같다는 최초의 해명이 사실일 경우, 그 해명을 그대로 밀고 나온다면 당장 경찰총수로서의 자질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별 근거도 없이 한 얘기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조 후보자가 강연 도중 지나가는 얘기로 차명계좌를 언급했으나, 단순히 꺼낸 얘기는 아닐 것이라는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난해 5월 조 후보자는 치안정감인 경기지방경찰청장이었다. 조 후보자는 당시 경찰 지휘부의 일원으로서 경찰 내의 각종 정보보고를 접할 수 있는 위치였고, 차명계좌 발언 역시 경찰 정보보고 라인을 통해 올라온 ‘첩보’에 근거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다. 그럴 경우 조 후보자로서는 더더욱 그 경위를 밝힐 수 없는 처지다. 만일 경찰 내부 정보보고를 바탕으로 한 얘기였다면 누가 그런 보고를 했고, 그 보고의 근거는 무엇인지를 밝히라는 쪽으로 사태는 더욱 확산될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것이 돼 정국이 요동치는 사태를 불러올 수도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현재 조 후보자의 입장은 주간지나 인터넷에 근거해서 한 얘기는 아니라는 취지”라며 “노 전 대통령에게 송구한 상황인데 더 이상 무슨 얘기를 할 수 있겠느냐”고 분위기를 전했다.

민주당 측은 이날 청문회에 대해 “조 후보자의 발언이 단순히 실언이 아니라 의도가 있는 것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당 이규의 수석부대변인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조 후보자가) 차명계좌 발언으로 논란을 부추기고 막상 청문회에 나와서는 진정성 없는 해명만 늘어놓고 입을 다문 것은 일단 청문회부터 통과하겠다는 계산”이라고 말했다. 조 후보자가 청문회만 통과하고 나면 차명계좌 의혹을 다시 제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하튼 국회 청문회가 이 문제에 대한 의문을 속 시원히 풀지 못하면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및 차명계좌의 존재 여부는 검찰 수사에서 가려질 수밖에 없게 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신유철)는 노 전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변호사가 조 후보자를 노 전 대통령과 유가족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고발한 사건과 관련해 최근 입수한 조 후보자의 강연 동영상 내용을 분석하고 있다. 또 차명계좌 발언이 허위인지를 가리기 위해 지난해 노 전 대통령 관련 의혹을 수사했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수사기록을 넘겨받거나 당시 수사팀 관계자들을 불러 확인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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