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다음 달 초로 예정된 노동당 대표자회를 앞두고 급히 중국을 방문한 것은 3남 김정은으로 후계구도를 안착시키기 위한 행보라는 분석이 많다. 5월에 이어 불과 3개월여 만에 중국을 다시 방문한 것은 현재의 대내외 정세와 경제위기 상황을 앉아서 지켜볼 수 없다는 다급한 사정도 내비치는 대목이다.》
[1] 체제강화 내우외환 상황 돌파구… 권력승계 中과 매듭
스인훙(時殷弘) 중국 런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김정일은 방중을 통해 후계문제에 더 나은 환경을 만들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내우외환의 열악한 상황을 돌파하고 원만하게 후계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도 “김 위원장이 중국의 지원이 없으면 권력승계를 순조롭게 마무리할 수 없다고 보고 중국 지도부와 이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급거 방중한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 관측이 사실일 경우 김 위원장은 올해 5월 5차 방중을 마치고 돌아온 후 가을 노동당 대표자회를 통해 후계 문제를 공식화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5월 3∼7일 김 위원장의 방중 후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6월 23일 ‘결정서’를 내고 “조선노동당 대표자회를 주체99년(2010년) 9월 상순에 소집한다”고 밝혔다. 북한과 중국은 5월 베이징(北京) 정상회담에서 ‘전략적인 의사소통’ 강화에 합의해 김 위원장으로선 왕조시대 세자책봉을 승인받 듯 당 대표자회 이전에 김정은의 새 당직 등 후계자 관련 정보를 중국에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북한의 내부 체제 이완 방지를 위한 중국의 협조를 구하는 것 역시 다급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17일 중국 랴오닝(遼寧) 성에 북한 전투기가 추락한 것은 1983년 이웅평 사건 이후 처음으로 탈북을 위한 하늘길이 열린 것”이라며 “김 위원장은 육지와 바다, 하늘을 통한 대량 탈북 문제에 중국의 협조를 구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 위원장이 과거와 달리 탈북자가 많은 동북 3성 쪽으로 방중 루트를 잡은 것도 이를 시사한다는 것이다.
[2] 외교전략 美 추가제재 발표 앞두고 北 특유의 관심끌기
김 위원장의 방중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인 석방을 위해 북한에 와 있고 북핵 6자회담 중국 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방한한 날 이뤄졌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일정 조정이 어긋났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잘 짜인 각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국내외적 어려움을 일거에 해결하기 위한 북한 특유의 관심 끌기 행보라는 것이다.
북한이 천안함 사건을 일으킨 뒤 한반도 정세는 국제사회의 강경한 대북제재 기류로 흘러가고 있다. 당장 미국의 추가 대북제재 발표를 앞둔 상황이다. 과거에는 북한이 문제를 일으켜도 6자회담에 나간다거나 대화에 응한다는 신호를 보내면 문제가 해결됐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도 김 위원장의 급박한 움직임을 이끌어낸 배경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과 중국 지도부의 접촉은 그 내용에 따라 한반도 정세를 긍정 또는 부정의 방향으로 전개시킬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이 천안함 문제를 해결하고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는 등 긍정적으로 문제를 풀 의지가 있다면 6자회담 재개 등 이벤트가 이어질 수 있다. 반면 김 위원장이 카터 전 대통령을 평양에 남기고 중국으로 간 것은 미국을 자극하기 위한 행보일 수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키우고 적대적 양극체제를 구축해 체제 생존을 꾀하려 할 경우 북-미 관계는 계속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성한 고려대 교수는 “미국과 중국이 천안함 문제로 꼬인 한반도 문제의 매듭을 풀기 위해 전략적인 대화를 비밀리에 가졌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며 “이런 기류에 놀란 김 위원장이 중국을 설득하고 지지를 요청하기 위해 방중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3] 원조요청 신의주 수해로 최악 상황… 손벌리기 나선듯
김 위원장이 김정은의 후계자 공식화를 앞두고 중국에 추가적인 경제지원을 요구하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더욱이 최근 신의주에서 큰 수해가 나는 등 피해가 심각해 국제사회에 원조를 요청하는 상황에서 당장 중국의 경제지원이 절실해졌다. 신상진 광운대 교수는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로 경제가 어려운 가운데 신의주 수해 피해가 심각해지자 중국의 추가적 경제지원을 요청하려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이 올해 5월 중국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경제지원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지 못한 가운데 내년부터 시작되는 중국의 12차 5개년 개발계획에 북-중 경제협력 프로젝트를 더 포함시키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신 교수는 “북한은 과거 중국의 식량과 에너지 지원 차원을 넘어 중국의 경제발전에 북한 경제가 구조적으로 연동되는 형태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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