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게이트 연루설' 등으로 정치권의 혹독한 검증을 받았던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가 29일 오전 지명 21일만에 전격적으로 자진사퇴했다.
2000년 6월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 검증 과정에서 낙마한 총리 후보자는 국민의 정부 당시 장상, 장대환 후보자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이며 청문회를 마친 뒤 인준표결 전에 사퇴한 것은 김 후보자가 처음이다.
이에 따라 '40대 젊은 총리'를 앞세워 소통과 통합을 강화하고 집권 하반기 국정운영을 힘 있게 추진하려던 이명박 대통령의 구상도 다소 차질을 빚게 됐다. 또 7·28 재보선 승리로 한때 주도권을 잡은 듯했던 여권의 기세에도 제동이 걸렸다.
김 후보자의 사퇴발표 직후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내정자도 자진사퇴해 그동안 총리 및 장, 차관 인사검증을 놓고 정점으로 치닫던 여야간 대치국면은 일단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민주당 등 야권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의혹 발언 등으로 물의를 빚은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 등 일부 내정자들에 대해서도 사퇴를 압박하면서 정국 주도권을 잡으려고 시도하고 있어 여야 대립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김 후보자는 이날 오전 광화문의 개인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저의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데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더는 누가 돼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저는 오늘 총리 후보직을 사퇴하고 백의종군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각종 의혹에 대해서는 억울한 면도 있지만 모든 것이 제 부덕의 소치라고 생각한다"면서 "국민의 믿음이 없으면, 신뢰가 없으면 총리직에 임명돼도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사퇴배경을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김 후보자의 사의를 공식 전달받고 "인사 내정 후 8·15 경축사에서 '함께 가는 국민, 공정한 사회'를 국정기조로 제시하고 개각 내용에 대해 그간 국민의 눈높이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는 평가가 있다는 점을 고려, 이번에 내정자들의 사퇴 의사 발표는 국민의 뜻에 따른 것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말했다고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정부는 심기일전해서 국정을 바로 펴는데 가일층 노력을 기울이겠다"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공정한 사회의 원칙이 공직사회는 물론이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서 뿌리내리도록 힘 쏟겠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의 사퇴 발표 직후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이재훈 식경제부 장관 내정자도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으며 이 대통령은 이를 즉각 수용했다.
김 후보자는 27일 밤 임 실장을 만나 사실상 사퇴의사를 전달했으며 임 실장과 정진석 정무수석은 김 후보자와 신 문화장관, 이 지경장관 내정자의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당 내외 여론을 이 대통령에게 전달했고, 이 대통령은 주말 고심 끝에 이들의 거취에 대한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곧바로 후임 총리 후보자와 문화, 지경장관 내정자에 대한 인선 작업에 착수했으며 추석 이전인 내달 중순 전에는 인선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후임 총리 후보자 인선은 가급적 빨리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 등 3명의 사퇴에 대해 한나라당은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뤘으며 인사검증 시스템이 시급히 보완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안형환 대변인은 논평에서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고심 어린 결단으로 평가한다"며 "한나라당은 겸허한 마음으로 국민의 뜻을 받드는 소통의 국정운영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등 야권은 당연한 귀결이라면서 이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영택 원내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김 후보자의 자진사퇴는 사필귀정"이라며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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