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10시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는 가운데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가 그동안 개인사무실로 써온 서울 종로구 내수동의 한 오피스텔 로비에 다소 수척해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는 A4 용지 1장 분량의 발표문을 안주머니에서 꺼내 담담하게 읽어 나갔다. 수십 명의 취재진이 몰려들었고 임채민 총리실장 등 총리실 주요 간부들도 배석했다.
김 후보자는 먼저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더는 누가 돼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총리 후보직을 사퇴하고 백의종군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고사성어를 인용하며 “국민께서 준 채찍을, 그 채찍을 스스로 달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무신불립은 ‘논어’에 나오는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자고개유사 민무신불립·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믿음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에서 유래했다.
이어 김 후보자는 “진솔하게 말하려 했던 것이 정말 잘못된 기억으로 말실수가 되고 더 큰 오해를 가져오게 됐다”며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의 관계 등 의혹들에 대해 거듭 부인했다. 그는 발표문을 읽고 두 차례 허리를 90도로 꺾어 인사한 뒤 “사퇴를 결심한 이유가 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자리에서 떴다.
■ 天要下雨… “비는 내리고 어머니는 시집가고 싶어하네” 어쩔수 없는 심경 트위터에 우회적 표현
김 후보자는 사퇴 발표 뒤 자신의 트위터에 ‘비는 내리고 어머니는 시집간다’는 짧은 글을 올렸다. 이는 중국 고사에 나오는 ‘天要下雨 娘要嫁人(천요하우 낭요가인·하늘에서는 비가 내리려 하고 어머니는 시집가고 싶어 하네)’라는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주요종(朱耀宗)이라는 서생이 장원급제를 한 뒤 홀어머니 진수영(陳秀英)에게 열녀문을 지어드리기 위해 황제의 허락까지 받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스승 장문거(張文擧)에게 개가(改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주요종이 “어머니가 개가하면 황제를 속인 죄로 목숨을 잃을 것”이라고 탄식하자 어머니는 비단치마를 풀며 “이 치마를 빨아 널어 내일까지 마르면 개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주요종은 마른하늘에 비가 오겠느냐고 생각하며 동의했지만 갑자기 짙은 구름이 끼더니 폭우가 하루 종일 쏟아져 결국 어머니가 개가했다는 내용이다. ‘막으려 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뜻하는 말이다.
1971년 마오쩌둥(毛澤東)은 측근 린뱌오(林彪)가 자신을 암살하려다 발각돼 비행기를 타고 도주하자 이 구절을 인용하며 “어쩔 수 없으니 가도록 내버려 두라”고 했다고 한다. 김 후보자의 한 측근은 “모든 것은 하늘의 뜻이고, 하늘의 뜻은 곧 민심이라는 뜻에서 쓴 글”이라고 해석했다.
한편 16일 취임한 안상근 총리실 사무차장(차관급·전 경남도 정무부지사)도 조만간 사표를 낼 예정이라고 총리실 관계자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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