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북한의 수해 복구를 돕기 위한 긴급구호용 쌀과 시멘트의 지원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면서 분배의 투명성 확보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쌀과 시멘트가 군대 지원용 등으로 전용되지 않고 수해 복구에만 쓰이는지를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 이명박 정부의 인도적 지원 기준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출범한 이후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의 대북 ‘퍼주기’ 관행을 비판하면서 대북 인도적 지원의 3원칙을 확립했다.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는 중단 없는 지원 △영·유아와 임산부 등 취약계층에 대한 우선적 지원 △지원 물자의 분배 투명성 강화가 그것이다.
과거 대북 지원 식량이 군량미로 전용되고 수해 복구용 굴착기가 군부대 시설 공사에 사용된다는 비판을 감안해 인도적 지원의 경우 먼저 수혜국의 요청이 있어야 하고 전용 가능성을 없애 실제 필요한 곳에 물자가 가도록 지원국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국제적인 규범과 관행을 도입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과거 공개적으로 남한에 지원을 요청한 적이 없었던 데다 국제적 기준의 모니터링을 허락할 여지가 적다는 점에서 실행 가능성에 문제가 제기됐다. 실제로 2008년 미국 정부는 세계식량계획(WFP)과 비정부기구(NGO)를 통해 식량 50만 t을 북한에 제공하기로 하면서 분배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한국어 사용이 가능한 요원들을 배치하기로 북측과 합의했다가 북한 정부가 이를 번복하자 식량 지원을 중단한 바 있다.
정부도 지난해 가을 북한에 옥수수 1만 t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뒤 인도적 지원 3원칙을 지키기 위해 북한과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정부는 함경도 등 취약계층이 사는 곳에 바로 식량을 지원하고 실질적인 모니터링을 하려 했으나 북한은 과거처럼 남포항에 물자를 내려놓는 장면만 보고 돌아가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원은 천안함 폭침사건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 모니터링 문제 상의할 회담 필요
이번 지원의 경우 수해를 당한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긴급구호 성격이라는 점과 북한의 요청이 있었다는 점에서 정부가 세운 기준의 기초 요건을 충족한 셈이다. 그러나 분배 투명성을 위한 모니터링 문제를 놓고 당국 간 힘겨루기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지난해 북한에 지원한 신종 인플루엔자 치료제와 방역제, 그리고 지난달 민간단체가 지원한 말라리아 방역물자 등은 전용 가능성이 낮다. 그러나 현재 북한이 원하는 쌀과 시멘트 등은 모두 전용이 쉬운 물품들이다. 따라서 정부는 의약품보다 더 강한 모니터링을 요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사례를 따른다면 정부는 수해가 심한 신의주 등 평양 이외의 지역을 골라 직접 식량을 배달하겠다고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또 지원 주체인 대한적십자사 직원 또는 민간 요원들을 되도록 많이 지원 장소에 보내 물자가 제대로 분배되는지 보겠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폐쇄적인 북한은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적십자회담을 열어 정부의 원칙과 기준을 설득하고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면 당초 제의한 100억 원 규모보다 더 줄 수 있다는 인센티브를 제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북한이 남한의 모니터링을 거부할 경우 북한이 믿을 수 있는 국제기구의 요원들을 대신 보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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