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국가에서나 최고지도자와 그를 둘러싼 엘리트 그룹의 교체는 필연적으로 정책의 변화로 이어진다. 옛 소련과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들은 당내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지도자들이 종종 전임자의 노선을 비판하고 정책을 바꾼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3대 세습의 한계 탓에 후계자의 등장이 곧바로 대내외 정책의 변화를 의미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 사회주의 지도부 교체와 정책 변화
1953년 이오시프 스탈린의 뒤를 이어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오른 니키타 흐루쇼프는 스탈린의 1인 독재를 비판하면서 대외적으로 ‘평화공존’을 내세워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와의 공존을 모색했다. 경제적으로도 고전적 사회주의 체제를 지양하고 시장메커니즘을 일부 도입하는 ‘신노선’을 폈다. 1985년 서기장에 오른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개혁과 개방을 내걸고 동서 냉전을 종식한 것도 지도자가 정책을 바꾼 극명한 사례다.
중국에서도 1976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사망한 뒤 1977년부터 공산당의 실권을 잡은 덩샤오핑(鄧小平)이 1978년 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11기 3중전회)를 통해 개혁 개방 노선을 표방했다. 이후 중국 사회주의는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1당 독재가 이어지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인다.
이처럼 소련과 중국 등에서 최고지도자의 교체가 정책 변화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사회주의적 집단지도체제 내에 민주주의적 요소가 살아남아 있기 때문이다. 공산당은 서방세계에는 모든 엘리트가 하나로 뭉친 단일체로 비쳤지만 실제로 내부에는 엘리트 간 정책 갈등과 정책을 중심으로 한 당내 파벌이 존재했던 것이다. 이들 파벌은 지도자 유고 등의 중대시기에 후계자와 정책을 변화시키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중국에서 덩샤오핑이 집권한 이후 당내 민주주의가 더욱 확대됐다”며 “당 최고지도부 간부들이 집단지도체제 내에서 다양한 의견을 내고 토론을 통해 정책을 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 아버지를 부정할 수 없는 북한의 한계
북한의 경험은 이와는 판이하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김정일로 권력이 넘어간 뒤 북한의 국가정책은 오히려 퇴보했다. 1990년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체제 전환 이후 대외적 고립 속에서 북한은 핵을 개발해 주변국들을 위협하고 국내적으로는 선군(先軍)정치와 낡은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고수하며 개혁과 개방을 거부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변하지 않는 것은 세습 때문”이라며 “아버지의 정책을 아들이 비판할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유교적인 문화 속에서 아버지와 전임자의 정책을 후계자가 공개적으로 비판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북한의 엘리트들이 65년 동안 큰 변화 없이 권력을 대물림하고 있는 점도 이런 한계를 증폭시키고 있다.
그러나 백승주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김정은은 어린 시절 스위스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고 생활이나 취미 면에서 서구 문화를 동경하고 있는 만큼 후계체제가 확립될 경우 친서방 정책과 정치 경제적 개혁 개방을 추구할 수도 있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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