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한 국가에 주재 중인 외교관 A 씨는 지난해 자녀를 연간 학비가 4만6082달러(약 5880만 원)에 이르는 국제학교에 보냈다. 정부는 A 씨에게 자녀 학비 명목으로 3만2473달러(약 4144만 원)를 지원했다. 또 다른 유럽 국가에 주재하는 B 외교관은 지난해 자녀 2명의 학교 등록비로 8만2618달러(약 1억542만 원)를 쓴 후 정부로부터 5만8742달러(약 7495만 원)를 학비지원수당으로 받았다.
정부가 해외 주재 외교관 자녀의 중고교 학비에 상한선을 두지 않고 본인이 신청하는 대로 무제한 지급하는 제도를 시행해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 외교관 학비지원 국내의 10배 이상
한나라당 윤상현 의원은 7일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토대로 “지난해 해외 주재 외교관 자녀(타 부처 소속이지만 외교부에 배속돼 파견되는 해외주재관 포함)의 중고교 학비지원 보조수당으로 무려 156억 원이 지급됐다”며 “학생 1인당 평균 연간 2000만 원이 넘는 비용이 지원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외교관 자녀 21.1%는 연간 학비가 3000만 원이 넘는 학교에 다녔다”고 덧붙였다.
국내에 근무하는 공무원의 경우 중고교생 자녀에 대한 학비지원수당으로 분기별 중학교는 6만2400원, 고등학교는 44만6700원 내에서 지원받고 있다. 자립형사립고나 특목고에 진학해도 상한액이 있어 학생 1인당 연 180만 원 이상 지원받을 수 없다.
○ “지원 제한없어 비싼 학교 선택”
이같이 고액 학비 지원이 가능한 것은 ‘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에 해외 주재 공무원의 경우 월 600달러 이하의 학비는 전액 지원하고, 이를 초과할 경우 초과금액의 65%를 지급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상한액이 없기 때문에 비싼 학교에 다닐수록 많은 지원금을 받는다.
윤 의원은 “학비 지원에 상한액이 없어 외교관들이 비싼 학교를 ‘선택’하게 유도한다”고 지적했다.
현행 제도는 해외에 주재하면서도 학비가 저렴한 학교를 선택한 외교관과 그렇지 않은 외교관 사이의 형평성 문제도 촉발한다. 실제로 윤 의원에 따르면 프랑스에 근무하는 한 외교관 자녀는 연 7074달러가 드는 학교를 다녔지만, 같은 지역 같은 학년인 다른 외교관 자녀는 연 3만9289달러가 드는 학교에 입학해 5.6배나 차이가 났다.
○ 해외 유학도 지원… 특혜 논란
학비 지원은 공무원이 근무하는 곳에 자녀가 따라갈 경우에만 지급하지만 근무지가 아닌 제3국에서 자녀를 교육시킬 때도 학비를 지원하는 사례가 있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처럼 치안이 매우 불안한 국가에 한해 예외적으로 가족을 제3국에 머물게 하고 학비를 지원할 수 있지만 개인적 사유로 사실상 ‘해외 유학’과 다름없는 경우에도 지원해 주고 있었다.
중국에 주재하는 한 외교관의 자녀는 ‘수업 과정에 차이가 있다’는 사유로 홍콩의 국제학교를 다니면서 1만9537달러(약 2493만 원)를 지원받았다. 인도 주재 외교관도 같은 이유로 캐나다에 자녀를 보내고 9742달러(약 1243만 원)를 받았다. 정부는 자녀 4명을 ‘대입 준비’ 명목으로 중국의 학교로 보낸 일본 주재 외교관에게도 2만4043달러(약 3068만 원)를 줬다. 이 외에도 ‘주재지에 국제학교가 없다’는 이유로 자녀를 미국 뉴질랜드 스위스 등으로 보낸 사례도 있었다.
윤 의원은 청문회에서 “구멍 뚫린 제도 때문에 해외의 외교부 직원이 저렴한 학교를 두고 비싼 학교를 찾고 있다”며 “이게 외교부의 개혁과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날 김 후보자는 “학비 지원에 문제가 있는지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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