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사망]13년 보필한 수양딸 김숙향 씨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12일 03시 00분


“최근 북한의 3대 세습에 진노… 어르신은 속상해 분사하신 것”

“어르신은 북한의 독재가 3대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고 속상해 분사(憤死)하신 것입니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수양딸인 김숙향 씨(68·사진)는 11일 서울아산병원에 차려진 고인의 빈소에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황 전 비서를 ‘어르신’이라고 불렀다는 김 씨는 이날 약 20분간 인터뷰를 하면서 북받치는 슬픔을 억누르기 위해 여러 번 호흡을 가다듬었다.

김 씨는 “어르신이 최근 북한의 3대 독재 세습에 크게 진노하며 ‘국제사회에서 그냥 놔둬서는 안 된다’ ‘내부의 권력투쟁 때문에 곧 무너질 것이다’라며 강하게 비판했다”고 전했다. 그는 “어르신은 남한 국민 중 올바르지 못한 정체성을 가진 일부 국민에게 북한의 독재체제 실상을 알리기 위해 한 시간도 낭비하지 않으려 뛰어다니셨다”고 말했다. 하지만 1997년 망명한 이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10년간 이어지면서 고인의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해 안타까워했다는 것.

김 씨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 2년 반이 지나면서 이제 뜻을 제대로 이뤄 보시려고 동분서주하셨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고인은 자신의 탈북 때부터 도움을 준 김 씨를 수양딸로 삼아 13년 동안 친딸처럼 아끼며 정신적인 위안을 받았다. 김 씨는 황 전 비서의 사실상 유일한 국내 가족이자 상속인이라고 측근들은 전했다. 황 전 비서의 한 지인은 “김 씨는 황 씨의 남한 생활 적응은 물론이고 저술 및 대외활동 등 각종 어려운 문제를 도맡아 처리했다”며 “황 전 비서는 외부인을 만날 때 자주 김 씨를 칭찬했다”고 전했다.

김 씨는 “어르신께서 저를 처음 보셨을 때도 ‘이렇게 정직한 여자가 있느냐’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이어 “돌아가시기 3일 전에도 ‘앞서가는 사람이 아프면 안 된다’며 편지와 전화 등으로 끊임없이 챙겨주셨다”고 했다. 나들이를 좋아했지만 보안 문제 때문에 바깥출입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황 전 비서는 생전에 1년에 한 번씩 수양딸과 서울 여의도 윤중로 벚꽃길을 걷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고 한다.

김 씨는 “미국의 최고 번화가인 뉴욕을 꼭 방문하고 싶어 하셨는데 이젠 이룰 수 없게 됐다”며 “어르신의 큰뜻을 보필하면서 피를 나눈 것보다 더 큰 의지가 됐는데 착잡하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동영상=故 황장엽 빈소, 조문행렬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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