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서 자란 고향을 등지고 대한민국으로 왔지만, 딸이 낳은 손자도 안아보지 못했습니다. 사위와 딸 손자가 면회를 와도 남북 간의 장벽처럼 유리창 너머로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헤어지는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탈북자 김명순(가명·52·여) 씨는 2007년 북-중 국경을 넘었다. 한국에 사는 둘째딸을 만나기 위해 중국과 라오스를 거쳐 올 2월 인천항에 도착했다. 이미 결혼해 아이까지 낳은 딸은 친정 엄마가 온 다음해인 올 5월에 결혼식을 올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김 씨는 한국 땅을 밟은 이후에도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1987년 북한에서 화교증(華僑證)을 취득했다는 사실을 말하자 한국 정부는 김 씨를 탈북자가 아닌 중국인으로 분류해 4월 29일 화성 외국인보호소로 보낸 것. 김 씨 아버지는 ‘문화혁명’을 피해 북한으로 넘어간 중국인이었고 북한에서 어머니를 만난 것이다.
김 씨는 현재 6개월 가까이 외국인보호소에 갇혀 있다. 정부는 김 씨를 중국으로 송환하려 했으나 중국 측에서는 “관련된 호구(戶口)가 없다”며 자국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북한에 살던 화교 출신 탈북자 김 씨는 ‘무국적’ 난민이 되어 어디로도 가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김 씨는 관계 당국에 제출한 국적판정 진술서에서 “잘 살아 보려고 타향에 왔지만 이렇게 됐네요. 여보 사랑해요”라고 적었다.
난민인권센터는 김 씨 같은 ‘무국적’ 탈북자 5명이 현재 경기 화성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어 있다고 25일 밝혔다. 탈북자 신분이지만 중국 화교 출신이어서 한국에 정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화성 외국인보호소 측은 “올 들어 화교 출신 탈북자 8명이 한국에 입국했는데 이 중 3명은 중국에서 신원 확인이 돼 중국으로 떠났고 5명이 남아 있다”며 “이들에 대한 법률 규정이 없어 문제 해결에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2008년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무국적 탈북자가 1만∼1만5000명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난민인권센터 김성인 사무국장은 “무국적 탈북자들은 중국에 호구가 없는 것이 확인된 후에도 현행법상 구제할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며 “김 씨를 포함한 5명에 대한 일시보호를 해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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