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출입기자, MBC '뉴스데스크' 앵커, 4선 국회의원를 거친 하순봉 경남일보 회장(69)이 '나는 지금 동트는 새벽에 서 있다'란 책을 발간했다.
언론인, 정치인으로 숨가쁘게 달려온 70년을 돌아본 회고록이다. 질곡의 세월을 산 동시대인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하는 역사의 진실들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과 이명박 대통령, 김종필 김재규 차지철 노신영 이회창 박근혜 등 대한민국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한 인사들과 관련한 비화들의 순도가 높다. 역사의 순간을 현장에서 목격하고, 과감한 필치로 옮겼다.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역시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술회다. 기대에 부응하듯 역사 속 금고에 봉인됐던 이야기들을 끄집어낸다.
박정희가 1979년에 서거하지 않았다면, 1981년 10월1일 국군의날 행사장에서 핵무기를 내외에 공개하고 하야하려 했다. 후계자는 JP, 김종필이었다는 부분은 충격적이다. 또 최규하 시절 12·12사태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전말을 털어놓은 대목에서는 역사의 아이러니에 몸서리치게 된다.
전두환 정권기에 민주화의 분수령이 된 1987년 6·29 선언을 두고 당시 민정당 대표 노태우의 승부수라는 시각과 전두환의 필사즉생 결단이었다는 증언이 맞서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하순봉의 시선은 새롭다.
김영삼, 김대중과 김종필이 때로는 동지, 때로는 적으로 만난 '3김시대'에 얽힌 사연에서는 박진감이 넘친다. 김영삼과 이회창의 갈등 또한 곁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노무현의 지지기반인 민주화 진보세력, 보수를 대표하는 현 대통령에게는 고언을 아끼지 않는다.
하순봉은 "30여 년 전 이탈리아 로마에서 취재를 마치고 프랑스 파리로 가는 비행기 탑승 중에 심한 악천후를 만나 비행기 안이 아수라장이 됐을 때였다. 울부짖거나 기도하는 대다수 동서양인 승객들과 달리 중년의 일본인 승객이 당시 상황을 남기려는 듯 차분히 적고 있었다"고 특기한다.
회고록을 쓰며 그때 그 일본인을 떠올렸다. 악천후가 잦았고, 파도가 높았던 지나온 길을 아수라장 속에서도 차분히 정리하고 기록하는 그 일본인과 같은 마음으로 적었다. 그 길을 객관적으로 전하려고 애썼다.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운 대로, 반성은 반성대로, 언론인답게 사실을 전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술했다. 회고록을 통해 자신을 정당화시키려는 여느 인사들과 다른 접근방식이다.
말더듬이 소년이 고통을 이겨내고 유명한 TV 앵커가 됐다. 박정희의 유신을 비판하다 처벌을 받았으면서도 되레 유신 잔당으로 몰려 천직으로 여긴 언론계를 떠나 정치의 길로 접어들어야 했다. 노신영 대통령을 꿈꿨고,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두 번이나 헌신했으나 실패했다.
"나는 언론인으로, 또한 정치인으로 현재의 상황과 미래의 꿈을 전하며 살아왔다. 책 제목을 '나는 지금 동트는 새벽에 서 있다'로 한 것은 나는 아직도 희망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320쪽, 1만7000원. 연장통
※ 하순봉은 1941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 중·고, 서울대 사대를 나왔다. 건국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차프만대학에서 국제정치를 공부했다. MBC에 기자로 입사해 TV앵커, 정치부장을 지냈다. 40세에 제11대 국회의원(민정당)으로 정치에 입문, 14~16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원내 제1당 대변인, 원내총무, 사무총장, 부총재, 최고위원을 거쳤다. 정치 현장을 떠난 뒤 경남대 석좌교수, 직업 전문TV 일자리방송 회장을 지냈다. 한나라당 상임고문, 경남일보 회장을 맡고 있다. 황조근정훈장을 받았고, 저서는 '그래도 희망은 있다' 등 여럿이다. 부인 박옥자 여사와 사이에 1남1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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