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식 강원 태백시장(42·한나라당)은 올 9월 초 시장실에서 한 은행 임원을 만났다. 그는 김 시장에게 태백관광개발공사가 운영 중인 오투(O₂)리조트 관련 부채에 대한 이자 14억4000만 원을 갚으라고 독촉했다. 독촉 받은 금액은 밀린 이자 전액이 아닌 일부. 그러나 태백시는 이마저도 상환하지 못했다. 3일 강원도청에서 김 시장을 만나 4개월 시정에 대한 심경을 들었다. 김 시장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며 “모라토리엄(지불유예) 선언은 성남시가 아니라 태백시가 해야 할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 ‘월급 못주는 공기업이 어디 있나요’
올해 7월 취임 이후 김 시장의 고민은 오투리조트에 집중됐다. 태백시가 대주주인 태백관광개발공사의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3336억 원. 태백시 올해 예산인 2300억 원보다 많다. 오투리조트는 무리한 사업 추진과 분양 저조로 이자가 연체되면서 하루 2400만 원의 빚이 쌓이고 있다. 이 때문에 리조트 간부들은 수개월째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세상에 임금 체불하는 공기업이 어디 있습니까. 최근 26억 원의 부가가치세 환급금이 없었다면 올겨울 스키장 문을 열지 못했을 것입니다.”
김 시장은 오투리조트 운영비 마련과 매각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강원랜드에 300억 원의 자금 지원을 요청했지만 답보 상태다. 매각도 쉽지 않다. 설령 매각하더라도 제값을 받기 어렵다. 김 시장은 “팔아도 빚을 다 갚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시민 모두가 남은 빚을 떠안고 10년 이상 갚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 상태뿐 아니라 사업에 대한 자신감도 바닥이다. 시민들은 딴죽을 걸기 일쑤다. 오투리조트 실패로 불신이 팽배해진 탓이다. 김 시장은 태백에 있는 낙동강 발원지에 대해 생태하천 복원 사업을 추진했다. 사업비 500억 원 가운데 국·도비가 80% 지원되는 유리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각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이를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
○ 일자리 없어 선거 도운 분들도 쉬고 있어
김 시장은 이런 상황이 단체장들의 전시 행정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태백시에서는 지난달 고생대자연사박물관이 문을 연 데 이어 국민안전체험테마파크와 국민체육센터가 건립 중이다. 하나같이 적자 운영이 불가피한 시설이다. 특히 총사업비 1940억 원이 투입돼 내년 10월 개장 예정인 국민안전체험테마파크는 벌써부터 애물단지 신세다. 사업비 363억 원 확보가 쉽지 않다. 개장 후 매년 60억 원에 이르는 운영비를 쏟아 부어야 한다. 이 때문에 태백시는 정부가 운영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김 시장은 취임 후 도 단위 이상 행사에만 참석하기로 했다. “축사 5분 하려고 1시간가량을 허비하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죠. 그래서 지역 행사는 불참하겠다고 공언했더니 일부에선 ‘다음 선거에 안 나오려나 보다’고 수군거리더군요.”
민원도 만만치 않다. “책상에는 취업을 부탁한 사람들의 이력서가 수북이 쌓였어요. 태백에 일자리가 없다 보니 취업이 너무 어려워요. 선거 때 도와준 분들도 거의 쉬고 있는데요.”
○ 파산한 일본 유바리 시와 상황 비슷
현재 태백시 상황은 2007년 파산한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유바리(夕張) 시와 흡사하다. 유바리 시는 태백과 같은 유명한 석탄 생산지였다. 폐광으로 도시가 몰락한 이후 시장은 유바리 시를 관광도시로 만들기 위해 대규모 리조트와 테마파크를 만들었다. 그러나 적자 운영으로 파산 당시 시 1년 예산의 10배가 넘는 600억 엔(약 8160억 원)의 빚이 쌓였다. 유바리 시는 현재 중앙정부로부터 관리를 받는 ‘재정재생단체’가 됐다.
김 시장은 “태백과 유바리 시 상황이 신기할 정도로 비슷하다”며 “일본과 한국의 제도나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태백시가 파산할 가능성은 작지만 유바리 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태백시를 꼭 제 궤도에 올려놓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 시장은 신문기자 출신으로 2006년 강원도의회 의원 당선에 이어 올해 6·2지방선거에서 시장으로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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