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내에서 제기된 감세정책 수정 요구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 해당 부처가 유연한 자세를 보임에 따라 여권 내 감세 논의가 당초 예상과는 달리 별다른 파열음 없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말 한나라당 일각에서 “부자 감세라는 오해를 받을 필요가 없다”(정두언 최고위원·10월 27일)며 감세공약 철회 요구가 터져 나왔을 때 청와대가 보였던 격앙된 분위기는 이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이런 순항 기류는 청와대가 세금정책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정리하면서 시작됐다는 관측이 있다. 청와대는 ‘감세철학은 유지한다’는 전제하에 ‘법인세는 반드시 인하(22%→20%), 소득세는 합리적 조정’이라는 해법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즉, 감세액 가운데 80%를 차지하는 법인세는 약속대로 내리는 한편 연소득 8800만 원 이상 고소득자의 소득세는 당내 해법 가운데서 절충점을 찾겠다는 것이다.
당내에선 박근혜 전 대표가 내놓은 35% 세율을 그대로 유지하는 방식과 안상수 대표가 제시한 1억 원+알파에서 최고세율 구간을 신설해 35% 세율을 적용하고 8800만 원∼1억 원+알파 구간은 35%→33%로 감세하는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16일 “명분(감세철학 유지)과 실리(‘부자 감세 비판’ 벗어나기)를 얻을 수 있는 포석을 찾았다”고 말했다.
○ 당정청 9인회의“부비트랩 피하자”
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격주 단위로 일요일에 열리는 당정청 9인회의가 있었다.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핵심의제는 ‘감세 문제’였다.
안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부자만 감싼다는 말을 더 들을 이유가 없다”며 당의 향후 입법화 노력에 청와대가 동의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참석자들은 대체로 ‘일리가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만 백용호 정책실장은 “경제 철학과 관련된 사안인데 민주당이 낙인찍는다고 그때마다 대선 공약을 하나씩 뒤로 제쳐놓고 양보하면 안 된다”는 원론 차원의 반론을 폈다는 후문이다. 백 실장은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말하는 ‘샤워실의 바보(Fool in the Shower)’ 비유를 들어 반대 의견을 내왔다. 샤워기를 틀고 조금만 기다리면 적정 온도의 물이 나올 텐데 초기에 찬물만 나온다며 ‘Hot’ 쪽으로 끝까지 꼭지를 확 돌리고, 또 뜨겁다고 다시 ‘Cold’ 쪽으로 끝까지 돌려버리는 경우를 뜻한다. 결국 9인은 결론을 내리지 않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이후 다시 논의하자”며 회의를 마쳤다고 당 관계자는 설명했다.
청와대의 한 참모는 16일 청와대의 기류를 ‘부비트랩(booby trap) 탈출론’으로 설명했다. “민주당이 ‘이명박 정부는 부자를 위한 정당’이란 덫(부비트랩)을 씌우는 데 성공한 만큼 이번 기회에 오해는 풀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설명이었다.
그런 고민의 결과가 법인세와 소득세의 분리 처리 방안이다. 청와대는 이런 흐름에 따라 11월 들어 “감세철학의 핵심은 투자를 촉발하는 법인세”라는 논리를 내놓고 있다.
○ 친박계와 소통
청와대는 감세정책을 놓고 박 전 대표 측과 교감을 시도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박 전 대표가 15일 △일자리를 만들고 △대외 신인도 및 정책 신뢰성 훼손을 막기 위해 법인세율을 낮추자고 한 것은 그동안 청와대 실무라인의 대언론 설명과 논리나 표현이 흡사하다. 물론 한나라당의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은 “청와대와의 사전 교감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안 대표가 박 전 대표와 같은 날 감세정책 구상을 제시한 것은 공교롭다.
청와대는 최근 친이(친이명박)-친박 진영의 원만한 관계 유지를 ‘국정 일체감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사안’이라고 여기고 있다. 한 참모는 “감세문제를 놓고 ‘국정 일체감’을 해치는 일은 안 생길 거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청와대는 한나라당이 단일안을 마련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22일 당 의원총회에서 정책 논쟁을 벌이고, 그 결과를 국민에게 설명하고, 그 반응을 피드백 받고, 다시 논쟁하는 순환과정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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