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정확성 결여 논란 ‘한국어판 위키피디아’… 전직 대통령-북한 관련 내용 분석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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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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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인터넷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만드는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는 2001년 처음 선보인 이후 ‘참여’라는 인터넷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하는 발명품이라는 찬사를 받아왔다. 하지만 내용의 정확성이나 공정성에 있어 적지 않은 오류와 왜곡이 발견되는 등 논란을 빚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공정언론시민연대(언론연대)는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한국어판 위키피디아의 내용을 분석한 뒤 사전에 실린 내용이 얼마나 사실에 부합하는지, 현재 논쟁 중인 사안을 일방적으로 한쪽 편에 유리하게 기술했는지를 조사했다. 언론연대는 “김대중 김영삼 박정희 이승만 등 4명의 전직 대통령과 김일성 김정일 등 북한 최고위층 지도자들에 대한 한글판 위키피디아의 내용을 분석한 결과 100건이 넘는 오류가 발견됐다”며 “사실관계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역사적 사실과 다르거나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사실인 것처럼 표현하고, 북한을 찬양하는 듯한 표현도 다수 있다.

○ 전직 대통령에 대해선 근거 없는 폄훼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박 전 대통령이 한국전쟁 발발 중 군사반란을 시도했으나 급박한 전투 상황을 고려해 상급자들이 이를 무마시켰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는 근거가 전혀 없는 소문이라는 것이 현대사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위키피디아에는 또 ‘5·16군사정변은 당시 군수사령부 사령관 소장이었던 김종필 주도하에 육사 8기생 출신 해병대, 6군단 포병대 등이 일으킨 군사정변으로 박정희는 정변 거사 도중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윤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군수사령부 사령관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고 군사정변 주도도 그가 직접 했다”고 말했다. ‘이승만’으로 검색된 문서 중에도 ‘이승만이 하와이 재미교민들의 돈으로 귀족처럼 호의호식하며 생활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하와이 재미교포를 양극화시켰다’는 내용이 있다. 이 글을 작성한 이는 각주로 2개의 언론 기사를 첨부했으나 실제 기사에는 이 같은 내용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우 ‘1989년 3월 노태우 전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중간평가에 대한 유보를 결정하는 과정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 개입했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당시 동아일보(1989년 3월 21일자 1면) 등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중간평가는 대국민공약이기 때문에 반드시 실시돼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한 것으로 돼있다. 김기수 전 대통령수행실장은 김 전 대통령이 1990년 3당 합당을 전후해 노 전 대통령에게서 40억여 원의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 있다는 위키피디아의 기술에 대해서도 “당시 민주당 재정위원회에서 정치자금 관리를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도 없었던 데다 김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에게 돈을 받을 이유도 전혀 없었다”며 “근거 없는 소문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기술 부분에는 ‘1959년 차용애(김 전 대통령의 첫 부인)가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자살했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최경환 전 대통령비서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서전을 봐도 차 씨는 병환으로 숨진 것으로 기록돼 있다”며 “자살은 전혀 근거 없는 소문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 내용에 대한 각주에는 참고문헌이 ‘만화 김대중’으로 되어 있으나 이 책은 내용에 오류가 많아 논란이 있었다.

이 밖에도 언론연대는 “1951년 3월 마산의 교회에서 결혼한 김영삼 대통령에 대해 ‘1953년 부산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거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14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날을 (1992년) 5월 25일이 아닌 5월 15일로 잘못 표기하는 등 세부적인 내용에서 수십 건의 오류가 추가로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 북한 관련 내용은 찬양 일색


김일성 부자나 북한 관련 내용은 북한 당국의 선전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북한을 찬양하는 듯한 표현이 곳곳에 실려 있다. 김일성에 대한 설명 첫 문장에서는 그를 ‘한국의 독립운동가’로 정의했다. 고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창시한 ‘주체사상’을 김일성이 창시했다고도 했다. 김정일에 대한 설명 중에는 ‘김정일이 산문과 가곡을 쓰고 세계 각국을 여행했다’고 표현했지만 여러 기록을 보면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이다.

판문점 인근의 나뭇가지를 자르다 북한의 갑작스러운 도끼 공격을 받아 미군 2명이 사망한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에 대해서는 ‘미군이 손에 들고 있던 도끼를 먼저 집어던져 조선인민군 병사가 이 도끼를 잡아 되받아 던짐으로써 미군 장교 1명이 즉사했다’는 북한 측의 일방적 주장이 실려 있다.

이 밖에 북한이 1993년부터 수년간 겪었던 최악의 식량난인 ‘고난의 행군’에 대해서는 ‘당시 60만∼90만 명의 사람이 아사했다’거나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은 강성대국으로 향하고 있다’는 등 사실상 북한 측 주장이 담겨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이 기간 굶어 죽은 북한 주민만 3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조선인민공화국’은 ‘광복 직후 한반도의 첫 근대국가이자 최초의 통일국가’라고 했으나 조선인민공화국은 역사적으로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 해킹부대 등에서 한국인들의 ID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위키피디아에 접근하는 것 같다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실제 올 6월에는 북한 측 인사가 도용한 주민등록번호로 국내 인터넷 사이트에 천안함 날조설을 집중 게재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에서 직접 이 같은 내용을 작성했을 수도 있지만 해외 또는 국내의 북한 추종세력들이 사실과 다른 내용을 올리거나 각색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전문가들 “편향된 정보 거를 시스템 마련 필요” ▼
“믿어봐” 국민 87% “위키피디아 내용 신뢰”… “믿지마” 해외 언론-공공기관 “참고 말아라”


로버트 케네디 미국 법무장관의 보좌관이었던 존 시건솔러 씨는 2005년 12월 위키피디아 때문에 큰 홍역을 치렀다. 자신에 대한 정보 중 ‘시건솔러가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인물’이라는 내용이 수개월 전부터 추가된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시건솔러 씨는 위키피디아 운영진에 강력하게 항의했고 얼마 후 이 내용이 삭제된 뒤에야 해프닝이 마무리됐다.

해외에서도 위키피디아의 잘못된 정보에 대한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이 때문에 많은 언론이나 공공기관에서는 “기사나 공문서를 작성할 때 위키피디아를 참고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2007년에는 미국의 유명 골퍼 퍼지 죌러 씨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이 위키피디아에 올라가 있다며 인터넷주소(IP)를 추적해 이 IP를 사용하는 회사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도 했다. ‘죌러가 술과 마약에 찌들어 살고 있으며 가정에서 폭력까지 휘두른다’는 음해성 글이 적혀 있었다는 것. 또 2006년에는 켄 레이 전 엔론 회장의 사망사건 직후 위키피디아에 사망 원인을 둘러싼 수많은 추측이 사실인 것처럼 올라와 가족과 회사를 곤혹스럽게 했다.

왜곡되거나 일방적 주장이 담겨 정확성과 공정성에 의심이 가는데도 많은 사람들은 위키피디아의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언론시민연대가 올해 9월 한 달간 47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위키피디아의 내용을 신뢰한다는 대답이 410명(87%)에 이르렀다. 또 전체의 286명(61%)은 백과사전으로 위키피디아를 활용한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사실관계를 정확히 검증하거나 편향된 정보를 걸러 사용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제도나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박성희 이화여대 언론홍보학과 교수는 “위키피디아는 백과사전인 만큼 내용을 올리는 사람들의 정직성과 정확성이, 참여형이라는 점에서 성실성이 동시에 요구된다”며 “두 요소 중 하나라도 무너지거나 악의적으로 왜곡된 정보를 퍼뜨리려는 시도가 있다면 내용이 편향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사용자들도 내용을 무조건 사실로 받아들이지 말고 선별적이고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위키피디아에 실린 백과사전 못지않은 풍부한 콘텐츠는 집단 지성이 힘을 발휘한 성공적인 사례”라며 “사용자들의 신뢰도를 높이려면 정확성과 공정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동영상=김일성 사진 들고 광화문 활보하는 옛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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