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영 국방부 장관의 전격 경질에 따라 그동안 청와대가 구상해 온 군 인사개혁이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청와대는 26일 김관진 국방부 장관 내정자에 대해 “군대를 군대답게 만들 수 있는 분”이라며 군 개혁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무엇보다 청와대는 엄정한 평가를 통해 역량 있는 인사를 과감히 발탁하는 개혁을 단행하겠다는 구상이다. 청와대 내에선 “이처럼 당연한 이야기가 수십 년간 제대로 작동됐다고 평가받기 어렵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사관학교 기수별로 서열에 따라 핵심보직을 나눠 갖는 관행을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의견도 나온다. 한 참모는 26일 “능력이 뛰어나면 몇 기수를 건너뛰어 3성 장군이 참모총장으로 발탁되지 말란 법도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인사개혁을 미룰 수 없는 과제로 삼게 된 것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군의 부정확한 보고 실태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하는 보고조차 정확하지 않은 일이 생기는 ‘낡은 문화’를 외면한다면 국방개혁이 요원하다는 게 청와대의 판단이다.
한 고위 참모는 이명박 대통령이 연평도 상황 발생 직후 받은 보고 내용을 설명했다. 당시 군은 “(80발 응사는) 배치된 K-9 자주포로 할 수 있는 최대 역량을 모두 동원한 결과이며 적절한 수준”이라고 보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확인된 대로 K-9 자주포 6문 가운데 3문만 정상적으로 가동된 사실이 드러나자 청와대는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다른 참모는 “군의 초기 보고가 너무 장밋빛이었다. ‘적에게 기습당했다. K-9 자주포로 응사하고 있다. 하지만 교전 상황은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보고했어야 했다”며 “이렇게 보고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고 반문했다.
여기에 김 장관이 국회 예결위원회에 참석하느라 1시간 가까이 대응을 지체하고 청와대 외교안보장관회의에 상황 발생 2시간이 지난 뒤에 도착한 사실까지 겹쳐 이 대통령의 실망이 컸다는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그 상황을 뿌리치지 못한 장관도 문제고, 그 장관을 잡고 보내주지 않은 국회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와 함께 인사개혁을 포함한 70여 개 항목의 군 개혁안을 마련해 다음 달 이 대통령에게 보고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외부 인사의 장성 진급 심사 참여 △야전(작전 병과)보다는 국방부 보직(인사 정보 정책 병과)이 더 선호되는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국방부 보직에 민간전문가를 기용하는 국방 문민화 방안 등이 포함돼 있다.
한편 군 내부에서는 이번 장관 인사를 각종 사건 사고가 잇따르는 악재(惡材)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계기로 삼자는 분위기다.
한 영관급 장교는 “올해 군은 각종 사건과 사고로 얼룩졌다. 가족에게 아빠가 군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진 때도 있었다”면서 “장관 한 명이 바뀌었다고 군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이번을 계기로 젊은 장교부터라도 분위기 쇄신과 개혁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장교는 “김태영 장관이 명예롭게 퇴진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면서도 “어차피 물러날 장관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물러나는 것이 추락한 군의 사기를 다시 세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의견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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