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이명박 대통령과 중국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의 만남은 이례적으로 2시간 넘게 진행됐다. 하지만 의미 있는 의견 접근은 애초부터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고 외교 당국자들은 설명했다. 한 당국자는 “한반도 위기국면 평가, 해법 모색 방식을 바라보는 서울과 베이징의 시각차는 여전했다”고 전했다. 다른 고위 당국자는 “토론과 의견개진이 많았다”고 말해 양국 간 공통분모를 찾기가 쉽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특히 다이 국무위원이 제안한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 문제를 놓고 뚜렷한 시각차를 노출했다. 면담에 배석했던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사무특별대표는 귀국 후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자처해 “12월 상순에 6자회담 수석대표가 모여 협의하자”고 제안했지만 한국 당국자들은 “생뚱맞다”고 반응할 정도였다. 외교통상부가 논평에서 “매우 신중하게 검토돼야 한다”고 밝힌 것은 사실상 ‘지금으로선 수용 불가’의 완곡한 외교적 표현일 뿐이다.
이 대통령은 6자 회동에 대해 “워낙 성과를 낼 분위기가 아닌데 우라늄 핵 및 연평도 도발이 추가되면서 회담을 위한 회담을 여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점을 중국 측에 분명히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2003년 이후 수차례 열린 6자회담을 놓고 △성과 없는 말잔치에 그쳤고 △북한엔 핵 프로그램을 지속할 시간만 줬다는 평가를 내린 상태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이 거부 의견을 밝혔는데도 중국 측이 귀국 후 6자 회동을 제안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외교적 결례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날 면담 분위기는 홍상표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의 브리핑에 잘 녹아 있다. 브리핑을 살펴보면 중국 측이 이번 연평도 포격이 도발이며 북한이 도발 주체라는 점을 명확히 하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 관계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천안함 폭침사건을 다룰 때 중국이 취했던 비협조적 태도의 재판(再版) 같다”며 “이런 중국 측 태도가 북한의 또 다른 오판을 불러오게 하지 않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준(準)전시 상태를 방불케 하는 한반도의 위기상황을 풀어 나가기 위해 중국 측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리더십을 발휘해 달라고 당부했다. 또 “냉전시절에는 진영(陣營) 논리에 따라 ‘같은 편’을 돕는 게 일반적 흐름이었다면 21세기에는 객관적 실체에 근거한 합리적 판단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한 중국의 대북 압박이 필요하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홍 수석은 “이 대통령이 중국에 대해 할 이야기는 다 했다”고 분위기를 설명했다.
사실 이날 자리는 중국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지시로 왔다는 다이 국무위원의 설명대로 양국 정상이 나눈 간접대화 성격이 짙었다. 그래서 한때 ‘두 사람이 독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중국 측의 ‘중요 메시지’가 전달됐을 가능성이 주목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과 다이 국무위원의 독대는 배석자들이 좀 멀찍이 서 있는 가운데 통역을 포함해 5분 정도 진행돼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다이 국무위원이 이날 내놓은 메시지는 중국의 한반도 정책이 최근의 위기 국면에도 불구하고 달라지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었다.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무력이 아닌 대화로 문제 해결 △한반도 비핵화 등을 ‘한반도 정책 3대 원칙’으로 강조해 왔다. 또 대화의 필요성, 안정적 상황관리 등 종래의 태도를 정중하게 되풀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다이 국무위원의 방한이 베이징을 중심으로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셔틀 외교’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는 섣부른 기대를 내놓기도 했다. 다이 국무위원이 2차 북핵 위기 이후 평양을 잇달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6자회담 참가를 설득하는 등 나름의 성과를 얻어낸 전력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들은 다이 국무위원이 이번 북한 도발의 중재자가 될 가능성은 높게 보지 않는다. 한 당국자는 “중국은 한때 ‘제3국을 위해 대리하지 않는다’는 점을 대외원칙의 하나로 삼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결국 다이 국무위원의 긴급 방한은 알맹이보다는 만남 자체에 의미를 둬야 한다는 분석이 많다.
중국은 사전에 계획됐던 양제츠 외교장관의 방한(26일 예정)조차 군사동맹국인 북한의 연평도 포격 직후 일방적으로 취소한 바 있다. 민간인까지 공격한 비인도적 도발에도 불구하고 동맹국인 북한을 두둔하는 중국의 이런 행동은 ‘도를 넘어섰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불러왔다. 베이징 외교당국이 느낀 이런 부담은 서울 방문을 통해 최소한의 성의 표시는 해야 할 요인이 됐다.
다이 국무위원의 방한은 이런 사정을 반영하듯이 사전 예고도 없었을 만큼 급박하게 추진됐다. 중국 정부는 27일 오전 주중 한국대사관을 통해 다이 국무위원의 방한 일정을 통보했고, 급히 전세기에 올라탄 다이 국무위원과 대표단은 입국비자가 사전에 준비되지 않아 한국 내 공항에서 입국이 잠시 지연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