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전사한 해병대 연평부대 서정우 하사(21)와 문광욱 일병(19)의 합동영결식이 27일 오전 10시 경기 성남시 분당구 율동 국군수도병원 체육관에서 엄수됐다. 눈이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두 해병의 영결식에는 유족을 비롯해 김황식 국무총리 등 정부 관계자, 여야 정당대표 등 정치인, 각 군 장성과 미8군사령관, 해병대 현역 및 예비역 등 10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영결식은 해병대 최고 예우인 해병대장(葬)으로 진행됐다.
○ “백 배, 천 배로 보복”
장의위원장인 유낙준 해병대사령관은 ‘북괴군’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응징을 다짐했다. 유 사령관은 “해병대 자랑이었던 그대들에게 북괴군은 어찌 그리도 극악무도한 만행을 저질렀단 말인가. 사령관을 포함한 우리 해병대는 절대로 두 번 다시 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연평도를 공격한 북괴군에게 해병대가 지킨 성역을 기습 공격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 사랑하는 해병대원을 죽고 다치게 한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반드시 저들이 뼈저리게 후회하도록 백 배, 천 배로 갚아주겠다”고 강조했다. 유 사령관은 “오늘의 분노와 적개심을 해병대 현역과 예비역 모두가 뼈에 새겨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덧붙였다.
군 고위 인사가 공식 석상에서 강력한 보복 의지를 나타낸 것은 천안함 폭침 사건 때 이후 처음이다. 당시 천안함 46용사 영결식에서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은 “국민에게 큰 고통을 준 세력들이 그 누구든지 우리는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끝까지, 끝까지 찾아내어 더 큰 대가를 반드시, 반드시 치르게 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번에 유 사령관은 ‘북괴군’을 구체적으로 지목해 천안함 때보다 보복 대상을 분명히 했다.
추도사는 부대 선임으로 두 해병과 동고동락해 온 한민수 병장(21)이 맡았다. 한 병장은 서 하사의 동네 친구이기도 하다. 한 병장은 “2년여 동안 힘든 훈련도 참아내고 견뎌냈던 날들, 훈련 중 라면 챙겨 먹었던 날들, 소주 한 병 챙겨가며 할 이야기가 많은데 넌 대답이 없구나”라며 울먹였다. 한 병장 역시 “하늘에서 서북도서의 수호신이 되어 더 이상 해병대를 건드렸다가는 뼈도 못 추릴 공포의 맛을 볼 것이라는 것을, 하늘에서 벼락이 되고 천둥이 되어 분노의 마음을 한껏 뿜어내라”며 보복 의지를 다졌다.
영결식이 끝난 뒤 두 해병의 유해는 성남시영생관리사업소에서 화장된 뒤 이날 오후 국립대전현충원 사병 제3묘역에 나란히 묻혔다. 이 과정에서 서 하사 부모는 아들의 유해에 흙을 덮지 못하고 눈물만 삼켰다. 문 일병 부모도 “아들아, 아들아” 하며 목 놓아 울었다. 두 해병의 유해가 묻힌 곳은 천안함 46용사가 잠들어 있는 사병 제3묘역 308묘판으로부터 100m가량 떨어져 있다.
○ “영원히 잊지 않겠다”
영결식에 참석한 두 해병의 가족과 동료들은 옛 추억을 되새기며 비통해했다. 특히 추도사를 했던 한 병장의 슬픔은 더욱 컸다. 두 사람의 마지막은 대학수학능력시험 날이었던 18일. 한 병장은 먼저 휴가를 나왔고 뒤이어 서 하사의 휴가가 예정돼 있었다. 두 사람은 전화로 휴가 때 만남을 약속했다. 이것이 ‘절친’의 마지막이었다. 한 병장은 “정우가 ‘23일 휴가가 확정됐다’며 먼저 나와 있던 나에게 전화해 집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며 “부디 하늘에 가서 편안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문 일병의 유골함은 사촌형 문모 씨(28)가 들었다. 화로 속에서 사촌동생의 마지막을 지켜보던 문 씨는 “광욱이는 어렸을 때부터 옆집에서 살면서 업어 키우다시피 한 동생”이라면서 “남자다워지고 싶다며 간 해병대에서 이런 일이 생기다니 참담하고 믿기질 않는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 80대 노병도 20대 장병도 해병대歌 ‘눈물의 합창’ ▼ “울분과 분노 참을 수 없어”
백발의 노병(老兵)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코트 깃을 한껏 세워 멋을 낸 청년 장병의 눈가에서도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입을 모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대한의 바다의 용사/충무공 순국정신 가슴에 안고/국토 통일에 힘차게 진군하는 단군의 자손….” 27일 오전 서정우 하사(21)와 문광욱 일병(19)의 합동영결식장에 군가(軍歌) ‘나가자 해병대’가 울려 퍼졌다.
선창은 해병 440기 출신인 해병대양평군전우회장 김복중 씨(48)였다. “고인들이 즐겨 불렀던 ‘나가자 해병대’를 부르겠습니다. 하나 둘 셋 넷….” 김 씨의 말이 떨어지자 ‘귀신 잡는’ 해병대 예비역 및 현역 500여 명이 눈물의 군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김 씨는 “터져 나오는 울분과 분노를 참을 수 없어 노래를 불렀다”며 “언제까지 이렇게 당하고만 살 것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군가는 두 차례나 울려 퍼졌다. 그때마다 운구 행렬도 함께 멈췄다.
이를 지켜보던 노병의 눈가에 눈물이 글썽였다. 영결식장 2층에 있던 현역 해병들도 빨간색 이름표 위로 굵은 눈물방울을 떨어뜨렸다. 후배 2명의 부축을 받으며 영결식장을 찾은 김현순 씨(81·경기 안양시)는 “해병대 노래를 부르는데 눈물이 울컥 났다. 정말 답답하고 억울하다. 정부가 반드시 보복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제6대 해병대사령관을 지낸 공정식 전 국회의원(85)은 “나라를 위해서 일하다 북한 괴뢰들에 의해 돌아가신 영현들께 황송하고 죄송스러울 뿐”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올 8월 해병대를 전역한 가수 이정 씨(29)도 눈이 충혈돼 있었다. 24일 조문을 하고 영결식에 나온 이 씨는 “먼저 간 후임을 위해 선임과 예비역이 힘을 모아 대처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겠다”고 다짐했다. 오늘은 비록 눈물을 흘리지만 ‘해병대정신’으로 반드시 응징하겠다는 선후배 해병의 다짐을 뒤로하고 유해는 영결식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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