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원인인 대포병레이더의 오작동이 고장이나 병사의 미숙 때문이 아니라 북한의 전자전(電子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군은 올해 8월 북한이 유사한 전자전 테스트 도발을 한 것을 확인하고도 이에 대한 뾰족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군, 전자전에도 당했다
군 관계자들은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 10일째인 2일까지 북한의 1차 포격 당시 대포병레이더가 작동하지 않은 정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북한의 포격 당시) 대포병레이더로 (해안포 위치를) 잡지 못했느냐’는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의 질의에 “처음에는 잡지 못했고, 2차 사격 때는 잡았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합동참모본부는 다음 날인 25일 ‘레이더가 작동 안 한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확인 질문에 “확인하고 있다”고만 밝혔고, 몇 시간이 지난 뒤에야 “작동은 됐지만 포탄이 낮은 고도로 짧게 날아올 경우에는 잡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북한의 도발에 대포병레이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어디서 포가 날아왔는지 탐지하지 못했다는 보고를 듣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탄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이 대통령이 김 장관의 경질을 결심한 계기 중 하나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 새로 드러난 사실들
군 관계자는 “설마 했던 북한 전자기파(EMP) 무기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고 탄식했다. EMP 무기는 인명은 살상하지 않지만 반경 안에 있는 전자장비에 피해를 끼치는 첨단 무기다. 현대전이 대부분 전자기기에 기반한 통신·무장시스템으로 이뤄지는 만큼 EMP 무기는 지휘, 통신 및 무기 체계에 치명적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이 관계자는 “대포병레이더가 1차 포격 원점을 찾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K-9 자주포가 자동 입력된 무도기지 좌표로 발사한 50발 가운데 35발이 해상으로 떨어진 것도 전자기파의 영향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2차 대응사격에서는 대포병레이더가 비교적 정상적으로 작동했던 이유에 대해 “아마도 1차 대응사격 당시 무도기지에 있던 EMP 무기 일부가 파괴되면서 위력이 약화됐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북한군은 전파 방해 장치로 알려진 ‘재머(jammer)’를 이미 오래전부터 상당한 수준으로 개발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향 범위 내에 있는 전자기기의 작동을 막는 재머는 EMP 무기를 만드는 핵심 기술 단계 중 하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장관은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북한이 러시아에서 수입한 차량에 탑재해 다양한 지역에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교란하는 능력을 갖췄다. 이런 형태의 도발은 새로운 위협이기 때문에 현재 우리 군이 대비책을 강구하고 있다”며 “우리 군이 받을 수 있는 피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전술적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 북한의 전자전 기술과 군 책임론
북한의 EMP 연구는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08년 미국 하원 EMP 소위원회의 보고서는 러시아와 파키스탄, 중국의 과학자들이 북한에서 EMP 무기를 연구하고 있으며 북한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EMP 기술과 관련 무기를 보유했거나 몇 년 안에 무기 개발을 완료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핵무기를 상공 80km 이상에서 폭발시킬 경우 강력한 EMP 무기가 되어 한 방에 수도권의 모든 전자기기를 파괴할 수 있다. 이 경우 교통 통신을 비롯해 군 지휘 시스템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이런 위력 때문에 북한은 EMP 무기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고 개발에 박차를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군은 올해 8월 23∼25일 사흘간 전국 GPS 수신 및 감시국 29곳 가운데 전남에서 충남에 이르는 서해안 일부 지역에서 몇 시간 동안 전파 수신이 간헐적으로 중단된 사고가 일어난 것이 북한의 시험용 도발 때문일 것으로 보고 있다.
군이 이미 북한의 전자전 능력을 파악하고 있었고 해병대 연평부대가 오래전부터 이에 대비한 고성능 대포병레이더를 요구했다는 군 관계자들의 증언은 북한의 도발 대응 능력 부재 논란에 휘말려 있는 군 당국을 또다시 난처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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